박용만 ㈜두산 회장(54 )은 "M&A(인수 · 합병)는 다른 글로벌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도구"라며 "두산의 M&A 리스트에는 수백여 개의 국내외 기업 명단이 올라 있다"고 밝혔다. 또 "2020년까지 미국 포천지 선정 200대 기업에 진입할 것"이라는 새 목표도 소개했다.

두산그룹의 경영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박 회장은 최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기자와 만나 광고 얘기부터 꺼냈다. "하반기 채용시즌을 맞아 신문과 TV를 통한 광고를 더 늘렸다"며 "광고에 나오는 '사람이 미래다'라는 카피대로,두산엔 사람이 유일한 재산"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채용 규모를 늘린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4대 그룹보다 덩치가 작은 두산 입장에선 요즘 같은 불황이 오히려 좋은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인재에 대한 욕심도 내비쳤다. "그룹 내 전 세계 임직원 3만7000여명 중 외국인이 42%를 차지한다"며 "글로벌화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최고인사책임자(CHRO)에 이어 안전 · 환경 관련 글로벌 전문가들도 추가로 영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M&A 화두 역시 빼놓지 않았다. 우선 인수대상 기업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를 따져 보고,주관적인 적정 가격을 매기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에게 M&A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보통 최고경영자(CEO)들은 M&A를 통한 성과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M&A는 글로벌 기업들과의 기술 격차를 줄여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예를 들어 세계 유수 대학 공대 출신의 석 · 박사 인재를 두산에 데려온다 해도,미국 GE나 독일 지멘스의 연구원들을 따라갈 수는 없다. 기업 자체의 기술 수준 차이 때문이다. 이 차이를 빨리 줄이기 위해 M&A가 필요하다. "

두산의 M&A 과정도 예로 들었다. 그는 "두산의 기업 인수 대상 리스트에는 국내외 수백여개 기업의 이름이 포함돼 있다"며 "여기에 있는 기업들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 즉각 기술 수준,글로벌 네트워크,인수 적정가격 등을 따져 보고 인수 검토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과거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등과 같은 '메가 딜'은 그룹 차원에서 추진했지만 요즘엔 흐름이 바뀌었다고 했다.

박 회장은 "체코 터빈업체 스코다파워 인수는 두산중공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며 "각 계열사가 스스로 M&A를 추진해야 효과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향후 M&A 계획도 들려줬다. "스코다파워 인수로 당장 기술이 필요해 진행한 M&A는 대부분 마무리됐다"며 "다만 관심 리스트에 올라 있는 기업이 매물로 나오면 언제든 인수에 나설 준비는 돼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시장에서의 M&A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좋은 매물이 많긴 하지만,가격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대우인터내셔널,대우조선해양,현대건설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2007년 인수한 미국 소형 건설장비 회사인 밥캣에 대한 시장 우려에 대해 "그동안 불필요한 오해가 많았다"며 "지난 6월 삼화왕관 등 일부 계열사와 자산을 매각하면서 선제적인 대응을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여파로 밥캣의 실적이 예상보다 부진했지만,각 사업장에 대한 구조조정을 마친데 이어 유상증자 등 기존 계획도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에 대해선 '항상 진행형'이라고 했다. "어떤 기업에 대해서든 '구조조정이 언제 끝나느냐'는 물음은 바보 같은 질문"이라며 "두산은 1995년부터 얼마전 주류부문 매각까지 줄곧 사업을 조정해왔으며,기업의 성장과 변화는 계속되기 때문에 이 같은 구조조정은 당연히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의 중 · 장기 목표를 상대적인 개념으로 바꾼 사연도 털어놨다.

"두산은 2015년 그룹 매출 100조원을 달성한다는 장기 비전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절대적인 숫자로 목표를 설정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상대적 목표를 새로 정했다. 2020년까지 미국 포천지가 선정하는 200대 기업에 진입하는 게 우리의 새로운 꿈이다. 2030년까지는 100대 기업에 진입할 것이다. "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