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스페인월드컵에서 잉글랜드의 광적인 축구팬들이 프랑스의 상징인 수탉을 한마리 죽여 프랑스팀 골문 뒤로 던졌다. 무슨 수를 쓰든 숙적 프랑스만은 이겨달라는 주문(呪文)을 건 것이다. 비난이 빗발치자 잉글랜드 팬들은 이렇게 응수했다. "억울하면 프랑스도 영국의 상징인 사자를 죽여서 던져라".이쯤 되면 선수들의 투혼과 열광적 응원으로 유명한 한 · 일전보다 한 술 더 뜬다고 해야 할 게다.

축구경기는 가끔 국수주의적 색깔을 드러내면서 위험한 수준으로 치닫곤 한다. 1969년 7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월드컵 예선전을 치른 뒤 '축구전쟁'까지 벌였다. 경기 도중 온두라스 응원단 두 명이 죽은 데 대한 보복으로 온두라스 거주 엘살바도르인 수십 명이 살해되자 엘살바도르는 공습을 한 후 탱크를 앞세워 국경을 넘었다. 끊임없는 국경분쟁과 민족감정이 배경에 있었지만 전쟁의 표면적 계기는 축구였다. 어떻든 이 전쟁으로 3000여명이 목숨을 잃고 1만5000여명이 부상당했다.

세상이 불안하고 어수선할수록 축구가 공격적이고 거칠어진다는 설도 있다. 2차세계대전 발발 직전에 열린 1938년 프랑스월드컵에선 한 경기당 평균 4.67골,전 세계가 불황에 시달리던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선 5.38골이 터진 반면 평화가 정착되면서 경제가 안정된 1960년대 이후엔 평균 3골을 넘지 않았다는 게 근거다. 농담 섞인 분석이지만 일면 그럴 듯해 보인다.

남아공월드컵 유럽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프랑스가 티에리 앙리의 핸드볼 반칙에 의해 만들어진 골로 아일랜드를 누르고 본선에 오른 '사건'의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브라이언 카우언 아일랜드 총리의 재경기 요청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심판의 영역에 속한 일을 내게 묻지 말아 달라"며 넌지시 거절했다.

아일랜드 국민들은 앙리의 유니폼을 불태우고 그가 모델로 나선 제품의 불매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프랑스 국민들도 '부끄럽다'는 반응 일색이다. 프랑스체육교사협의회는 "반칙으로 본선에 나가는 걸 보고 아이들이 뭘 배우겠느냐"며 "본선 티켓을 반납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규칙을 지키지 않은 승리는 이렇게 오욕으로 얼룩지며 패배보다 더 큰 손실을 초래한다. 비단 스포츠뿐만 아니다. 세종시 문제,4대강 사업 등 굵직한 현안을 풀어가는 과정에서도 여든 야든 눈속임이나 편법을 쓰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라는 걸 잊어선 안될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