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이 은행권 빅뱅의 진원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20일 외환은행 인수 · 합병(M&A)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힘에 따라 이미 인수전 참여를 선언한 KB금융,산은금융지주와의 뜨거운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는 지난달 외환은행 지분(51.02%)을 6개월 내에서 1년 내에 매각하겠다고 예고했다.

업계에서는 외환은행이 누구 품에 안기느냐에 따라 향후 국내 금융업계의 판도가 달라지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외환은행의 9월 말 기준 자산 규모는 112조원이다. 총자산 160조원의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게 되면 자산 규모가 272조원으로 늘어나 KB금융(331조원) 우리금융(328조원) 신한금융(311조원) 등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

반면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에 실패할 경우 그 타격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하나금융이 이번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규모의 경제에서 밀려 다른 금융지주사와의 경쟁에서 도태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KB금융 입장에서는 외환은행 인수가 은행권 독주체제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KB금융이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하면 자산 규모 443조원의 초대형 금융회사가 탄생하게 된다. 2위권인 우리금융,신한금융 등과의 자산 규모 차이를 100조원 이상 벌릴 수 있다.

국민은행의 취약분야인 해외 및 외환부문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KB금융은 지난 7월 1조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으며 자사주 매각 등을 통해 인수자금 마련에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외환은행 노조의 반발이 변수다. 외환은행 노조는 최근 성명을 내고 "KB금융지주에 인수되면 외환은행의 조직과 정체성이 파괴된다"고 주장했다.

산은지주는 산업은행의 취약한 수신기반을 넓히려면 시중은행 인수가 불가피하다는 계산에 따라 외환은행을 인수 타깃으로 생각하고 있다. 민유성 산은지주 회장은 지난 17일 "특히 외환은행에 대해서는 열려 있다"며 인수의지를 공식화했다. 산은은 국내 점포수가 40여개에 불과하고 소매영업 기반이 전무하기 때문에 350개의 점포를 갖춘 외환은행 인수를 통해 국내 영업망을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산은지주 자체가 민영화 대상인 점이 변수다. 정부 의지와 상황에 따라 산은지주가 M&A의 주체가 될 수 있고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농협도 신용사업(금융)과 경제사업(농축산물 · 유통)을 분리한 뒤 신용부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외환은행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금융영업망으로는 시중은행들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신경분리 작업이 예상보다 늦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농협이 외환은행 인수전에 뛰어들기에는 무리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