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스라는 소녀는 어느 날부터 살이 찌기 시작한다. 아름답지 않으면 남자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조언을 들은 후부터다. 눈 코 입의 구별이 없어지고,허리의 굴곡도 사라져 온 몸이 둥글둥글해지더니,마침내 거대한 소시지가 되고 만다. 알리스의 집에 놀러온 플라비오 형제는 알리스를 기다리다가,집안에서 엄청나게 큰 소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마침내 그들은 주인도 없는 그 집의 소시지를 마음껏 잘라먹고 사라져 버린다.

이는 프랑스의 작가 소피 자페의 소설 작품 '알리스와 소시지'로,살이 찐 소녀를 남자들이 더 이상 인간으로 보지 않고 칼과 포크로 난도질해서 먹고 사라져가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섬뜩한 내용이다.

사람들은 여성들에게 언제나 아름답기를 강요하고,특히 뚱뚱한 여자에게는 어떤 농담이나 모욕적인 말로 폄하해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방송에서나 현실 속에서,뚱뚱한 여자에게 "몇 만평"이라든가,"성격 나쁜 것은 용서해도,못 생긴 여자는 용서하지 못 한다"거나,"모든 나이대의 남자가 20대만 좋아한다"든가,여자의 웃음소리나 말소리만 커도 팔자가 세다거나 과부 타령을 들어야만 했다.

아마 여성들도 불같이 화를 내야만 했을 것이다. 한 여대생이 '루저' 발언을 했을 때 키 작은 남자들이 분노했던 것처럼,우리 여성들도 뚱뚱한 여자나 못생긴 여자나 나이 들어가는 여자들에 대해 남성들이 폭언했을 때 여성들도 그렇게 분개하고 사과를 요구해야만 했었다. 도리어 여성들은 밥을 굶으며 다이어트하고,젊어 보이려고 성형과 미용에 끊임없이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다. 여성들은 여태 너무 관대했던 것은 아닐까. 여성들은 왜 외모지상주의가 낳은 그 섬뜩한 남성들의 발언을 허용하고,창백해서 쓰러질 정도로 굶어 왔을까.

최근 한 방송에서 있었던 '루저'발언 때문에 분노한 이들은 제발 우리나라 대통령도 180㎝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마음을 가라앉혔으면 좋겠다(대통령도 루저!).

사실,'루저'라는 표현에 사람들이 이처럼 들끓듯 반응한 것은,단순히 한 여대생의 말 실수나 그 터무니없는 잣대 때문이 아닐 것이다. 이미 키 작은 남성들이 받아왔던 차별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외모 차별의 폭력이 그만큼 횡행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여대생의 발언이 조심성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진짜 문제의 핵심은 '루저' 발언을 조장한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이며,그 발언이 헛소리거나 거짓말이라고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데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도전 슈퍼모델'이라는 리얼리티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미국의 타이라 뱅크스는 언젠가 자신의 쇼 프로그램에서 외모 차별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를 말한 적이 있다. 빼빼 마르고 키 큰 백인 여성 외에 흑인,동양인,플러스급 여성 그리고 키 작은 여성 모델을 선발해가며,미의 기준을 바꿔 왔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우리 내부에 들어있는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돌아볼 때가 아닌가 싶다. 키 작은 남자뿐만 아니라 뚱뚱한 여자와 못생긴 여자 그리고 탈모 광대뼈 가슴 코 사각턱 허벅지 등 신체를 부위별로 구분해서 우리는 얼마나 철저히 자신과 남을 비교하며 열등시해 왔던가. 말해 보라! 키 외에도,이런 외모의 부위별 차별 기준에 걸리지 않는 사람,누구 있는가. 타이라 뱅크스도 외모 차별을 받아본 흑인이기에 그런 의식을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앞으로 우리 국민 그 누구도 '루저'의 기준에서 빠져 나갈 수 없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