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자재 슈퍼 사이클'이라는 용어가 새로 등장했다. 원자재 가격이 장기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국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중국 등 신흥개발도상국들의 경제성장과 맞물린 원자재 슈퍼 사이클은 지난해 하반기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원자재 가격 폭락으로 일시 주춤하는 듯했다. 그러나 연초부터 다시 상승세로 전환돼,비철금속 시장의 대표 품목인 구리는 연초 t당 3090달러에서 10월 말 6610달러로 두 배 넘게 오르고 있다.

조달청이 올 들어 원자재 비축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비축재고를 확대해 가격 상승기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국제적인 품귀나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매점매석 등 국내 가격이 불안정해질 때 비축재고를 방출해 시장 안정화를 꾀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관련해 우리는 '지구촌 부(富)의 흐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얼핏 원자재 가격 상승의 최대 수혜자는 중동이나 비철금속 매장량이 많은 칠레 등 천연자원 부국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 더 큰 혜택을 보는 쪽은 선진국의 원자재 다국적 기업들이다. 이들은 유전에서부터 비철금속 광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원자재에 대한 지분을 확보하고,정제 · 제련과 유통 과정 등 원자재 공급 시장에서의 부가가치를 장악해 더 큰 혜택을 누리고 있다. 최근에는 선진국 금융자본들이 원자재를 투자수단으로 보면서 가격 상승폭을 더 키울 뿐 아니라 이익의 많은 부분이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흘러가고 있다.

문제는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엑손 모빌(석유),BHP 빌리턴(금속 · 석탄),미쓰비시(원유 · 철광석)와 같은 초대형 다국적 원자재 기업이 없다는 점이다. 또한 원자재 시장에 대한 경험부족으로 국내 금융회사가 원자재에 대한 투자를 꺼려 국내에서는 아직 상품 펀드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즉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제조업체들의 고통과 부담이 가중되고 있을 뿐 아니라,가격 상승으로 생기는 이득을 챙길만한 다국적 기업이나 금융회사의 출현이 요원한 실정인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원자재 부족이라는 숙명을 안고 태어났다. 그러나 경제의 글로벌화는 원자재 개발 및 유통시장 등과 연결해 주어진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제공해 주고 있다. 중국이 2조300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전 세계 자원시장을 대상으로 지분 확보에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습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민간 에너지기업들이 스스로 해외 자원개발이나 M&A를 통해 글로벌기업으로 거듭나는 터전을 마련해야 하겠지만,이를 지원하고 선도하는 정부의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중장기적인 자원개발과 단기적인 구매비축으로 원자재 슈퍼 사이클에서 벗어나려는 국가전략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