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6년간 우리 교육을 지배해 온 가치는 '평준화'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 사이엔 은연중 평준화는 좋은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자리잡았습니다. 그 환상을 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글로벌 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어요. "

김정래 부산교대 교수(교육철학)는 교육문제를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틀에서 천착해 온 대표적인 논객 중 한 사람이다. 좌파적 시각이 뿌리 깊은 우리 교육계에서 때로는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경쟁'을 주문해 왔다. 국가 주도의 획일적 교육정책을 줄기차게 비판해 온 그가 최근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원장 김영용) 의뢰로 '고혹 평준화 해부'를 펴냈다. '고혹(蠱惑)'은 주역에서 빌려 온 용어로 선대의 그릇된 점을 고쳐 나간다는 의미이다. 평준화가 도입된 1973년 당시 교육계 선배들이 잘못 마련해 놓은 정책의 폐단을 시정하고 해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 사회 거대담론 중 하나인 평준화 정책이 도입된 배경 및 해악 등을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평준화 정책이 어떤 폐단을 가져왔고 또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실증적으로 입증한 첫 종합보고서인 셈이다.

시장주의 교육학자가 보는 평준화의 병폐는 명쾌하다. 그는 "학교 선택은 개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결정인데 국가가 나서서 강제 배정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국가권력이나 교육당국이 학교 선택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는 그릇된 신념에 빠져 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평준화란 말은 '평형'과 '기준'을 지향한다는 뜻인데,이는 곧 교육을 국가 개입과 통제를 통해 바꿀 수 있다는 발상"이라며 "자유사회의 미덕인 '경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반시장적인 정책으로 인해 다양성을 추구해야 할 학교가 획일화의 길로 접어들고 자율성과 독창성이 훼손됐다"고 진단했다. 또 "최근 5년간 서울의 8학군(강남구 · 서초구) 학생들의 서울대 입학생 수가 1학군(동대문구 · 중랑구) 학생에 비해 12배 이상 많다는 게 확인됐다"며 "평준화정책이 명분에서 호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이처럼 오히려 불평등을 키우는 등 정반대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준화 정책이 가져온 폐해도 크지만 이를 없앨 생각은 안 하고 '보완'으로 극복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심각한 착각 중 하나라고 말했다. "알코올 중독의 근본적인 치유책은 다른 대증요법이 아니라 술을 끊게 하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평준화 정책의 폐해도 '보완'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전면 폐지하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홍성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