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량을 늘리거나 줄이면 물가는 어떻게 될까?
[경제교과서 친구만들기] (37) 통화정책 ①
미국 와이오밍(Wyoming) 주(州)에 위치한 계곡 지역인 잭슨홀(Jackson Hole)은 경치가 수려하기로 이름난 휴양지이다.

이곳에서는 1978년 이래로 매년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FRB)이 주최하며 미국과 세계경제의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회의가 열리고 있다.

일명 '잭슨홀 심포지엄'으로 불리는 이 연례회의에는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장들과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참여한다.

올해 8월에 '금융안정과 거시경제정책(Financial Stability and Macroeconomic Policy)'이란 제목으로 개최된 2009년 심포지엄에서 가장 화두가 된 주제는 통화정책의 최종목표에 관한 것이었다.

통화정책(monetary policy)은 재정정책,외환정책 등의 다른 경제정책들과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는 국민경제의 바람직한 상태를 실현하는 것을 정책목표로 한다.

통화정책이 여타 경제정책들과 구별되는 점은 중앙은행,즉 통화정책 당국이 통화량이나 이자율을 조절해 물가안정 · 완전고용 · 국제수지균형 · 경제성장 · 금융안정 등의 최종목표(goals)를 달성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집이나 차를 사기 위해 대출받을 때,저축을 하거나 주식 · 채권 등의 각종 금융상품에 투자를 할 때,기업이 공장을 세우거나 기계를 구입하기 위해 대출받을 때 최우선적인 고려사항이 되는 것은 이자율이다.

통화정책은 통화량과 이자율 조절을 통해 경제 내의 신용량과 금융자산 보유,나아가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금융정책 · 통화신용정책 · 통화금융정책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동안 통화정책은 여러 가지 최종목표 중 물가안정에 초점을 맞춰 왔는데 근래의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안정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는 주장들이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강하게 제기되었던 것이다.

화폐가 일정량의 금과 교환되던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과거 금본위제 시절에는 금본위제도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환율안정만이 통화정책의 최종목표였다.

1920년대 들어 일부 국가들에서 초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 현상이 나타나면서 물가수준 안정이 통화정책의 새로운 최종목표로 등장하기는 했지만,당시만 해도 정책당국이 경제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인식은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1930년대에 대공황을 겪은 이후에는 정부 및 중앙은행이 국내경제 운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물가안정뿐 아니라 경제성장과 실업문제 해소 또한 통화정책의 최종목표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을 획득한 많은 신생국들이 경제적 자립을 위해 경제성장을 도모하면서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높은 고용수준 유지는 통화정책당국의 새로운 임무로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장기에 경제 내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을 결정하는 것은 노동 · 자본 등과 같은 생산요소들의 양이므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통화량을 늘리는 확대통화정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연속된 확대통화정책으로 인한 통화량의 장기간 누적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인플레이션의 세계적 확산을 불러왔고,1970년대에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함께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등장하면서 인플레이션의 폐해가 극에 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나라들 사이에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국제수지균형 등은 물가안정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곤란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통화정책의 최종목표를 물가안정으로 단일화하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도 「한국은행법」 제1조를 통해 통화정책의 최종목표는 물가안정 달성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통화정책의 최종목표가 무엇이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instruments)들이 필요할 것이다.

통화정책의 대표적 정책수단으로는 교과서에 설명되어 있는 공개시장조작정책,대출정책(재할인율정책이라 부르기도 함),지급준비정책 등이 있다.

중앙은행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이러한 정책수단으로 최종목표가 되는 변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러한 일은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한다고 해도 이것이 경제의 여러 경로를 통해 물가까지 전달되는 시간은 길고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물가수준에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자신이 보다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다른 경제변수들을 찾아내어 이 변수값을 변화시킴으로써 최종목표인 물가수준을 바람직한 수준으로 유도하려 한다.

이렇게 중앙은행이 최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점 관리하는 명목경제변수를 명목기준지표(nominal anchor)라 부르는데 이에는 통화량,환율,이자율 등이 있다.

명목기준지표는 다시 운용목표(operating targets)와 중간목표(intermediate targets)로 나누기도 한다.

운용목표는 정책수단에 보다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고,중간목표는 최종목표변수에 보다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의 주가를 높이는 것이 최종목표인 기업가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주가는 기업이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윤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기업가는 우선 이윤을 증대시키는 것을 중간목표로 삼을 수 있다.

이제 기업가는 이윤증대를 위해 자신의 노력으로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변수를 찾게 될 것이다.

만약 기업가가 이윤증대를 위해 품질 향상에 주력하기로 했다면 이것은 통화정책의 운용목표에 해당한다.

기업가는 품질 향상을 위해 더 좋은 인재를 고용하거나 최신 설비 구입,연구시설 확충 등의 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는 통화정책에서의 정책수단에 해당한다.

다시 통화정책으로 돌아오자. 경기가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중앙은행은 최종목표인 물가안정에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때 중앙은행은 중간목표인 시장의 이자율을 높게 형성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자율이 높아지면 기업의 투자와 가계 소비가 줄어들어 총수요 증가가 감소하고 물가 상승이 둔화된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이자율의 운용목표인 단기금리가 높아지도록 금융시장을 운영할 것이다.

단기금리가 높아지면 장기금리 등 다른 시장의 여러 금리에 걸쳐 파급효과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중앙은행은 단기금리를 높이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정책 중 가장 적절한 것을 고를 것이다.

예를 들면 보유한 국공채를 단기금융시장에서 매각(공개시장조작)하면 중앙은행으로 통화가 들어오고 단기금융시장의 금리가 올라가는 식이다.

현재 한국은행도 이와 유사하게 기준금리를 통해 물가안정목표제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오늘 배운 통화정책의 기본 내용을 바탕으로 금리의 다양한 파급경로를 통해 통화정책이 실물 경제,나아가 물가안정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자세히 공부해볼 것이다.

김훈민 KDI 경제정보센터 전문원 hmkim@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