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메이저 영화 첫 주연작 기자회견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가 있다는데, 이번 '닌자 어쌔신'은 세 번째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한국 배우로는 처음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한 비(본명 정지훈)는 9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싱가포르, 홍콩, 태국 등 9개국에서 온 50여개 매체와 한국의 150여개 매체가 참가한 가운데 열린 영화 '닌자 어쌔신' 기자회견에서 이처럼 말했다.

비는 워쇼스키 형제와 조엘 실버가 제작한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조각 같은 단단한 몸매와 뛰어난 영어실력, 여기에 무표정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연기까지 보태며 주인공 라이조를 제대로 묘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늘 이 악물고, 정말 죽기 살기로 했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정말 그랬어요.스턴트도 90% 이상 제가 다 했어요.몸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체지방을 다 빼기 위해서 정말 노력했어요.고통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8개월간의 촬영은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뼈가 부러진 건 아니지만, 온몸은 멍과 상처투성이로 변했다.

아침 7시에 나가면 오후 10시쯤 촬영이 끝나고 자정까지 레슨을 받아야 했다.

온종일 녹초가 되는 삶이었다.

국내에서 성공한 배우 겸 가수로서, 충분히 좋은 여건에서 활동할 수 있었는데 왜 이런 고난을 자처한 것일까.

"정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아시아로 돌아가 콘서트도 하고, 영화도 찍을 수 있는데'라는 질문을 촬영기간 내내 던졌던 것 같아요.세 가지 이유 때문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우선 '세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을 내놓겠다'는 팬과의 약속이 있었어요."

두 번째는 자존심 때문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스태프들은 제가 힘겹게 100㎏짜리 역기를 들면 '너 정말 근성이 없구나', '맷 데이먼이나 브래드 피트 등을 가르쳐 봤는데 네가 제일 못하는 것 같다'라고 약 올렸죠. 독기가 올랐습니다. 세 번째는 진실이 아닌 왜곡된 사실을 담은 좋은(?) 기사와 댓글 때문이었습니다.매일 아침 그러한 내용의 기사를 스크랩했죠. 그러면서 정말 무언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고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어머니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해 자정에 들어와서도 새벽 1-2시까지 집에서 일하셨어요. (그런 어머니를 떠올리며) 제가 배불렀다는 생각을 했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할리우드에서 원톱 주연으로 가기까지는 역시 '매트릭스 시리즈'를 만든 워쇼스키 형제의 공이 컸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의 성공 가능성은 10% 미만입니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잘 받아주죠. '아시아에서 유명하다고요, 즐겁게 식사해요'라고 말한 다음에 연락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 워쇼스키 형제가 있고, 조엘 실버가 있으면서 (할리우드의)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뭐기에 저들이 제 옆에 붙어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지훈은 '닌자어쌔신'에 대해 질문하자 웃으며 이야기했다.

주인공 라이조와 비슷한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비슷한 점이 있으면 안 된다"고 웃으며 "저는 말하거나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혼자 숨어서 못 지낸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에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나,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이 등장하는 데 대해 "제임스 맥티그 감독과 한국 문화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한국 문화에 대해 굉장히 거창하게 공부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했다.

속편 제작 가능성에 대해서는 "사실 후속작을 하기로 계약했다. 반응이 좋다면 후속작은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닌자 어쌔신' 출연이 자신의 인생에서 세 번째 기회라고 했다.

"제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가 있었어요.첫 번째는 진영(박진영)이 형을 만났을 때였고, 두 번째는 워쇼스키 형제를 만났을 때, 그리고 세 번째는 워쇼스키 형제가 '닌자 어쌔신'을 제안하는 순간이었어요."

그는 '닌자 어쌔신'에 대해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성공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사실 기대는 하고 있죠. 너무 고생했고, 열심히 찍었으니까요. 그리고 이 작품이 성공해야 한국 배우를 비롯한 아시아 배우들의 기회가 많이 생길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랴' 하는 생각도 들어요. 가족 영화가 아니라 복수극에 피를 부르는 장르영화니까요. 마니아들은 좋아할 것 같아요. 일단 '닌자 어쌔신'은 흥행과 관련 없이 (저에게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영화가 될 것입니다. 이제 진검 승부가 시작된 거죠. 열 번이건, 스무 번이건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 박스오피스 1위 하는 날이 있겠죠."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buff2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