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단풍놀이를 못했다면 고창으로 방향을 잡아보자.끝물이기는 해도 군데군데 남아 있는 선운사 도솔천가의 고운 단풍을 볼 수 있다. 도솔천을 따라 도솔암,내원궁이나 낙조대까지 이어지는 길을 걷는 즐거움도 단풍 구경에 못지 않다. 고창읍성에서의 성밟기 또한 색다른 걷기 체험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선운사 도솔천 길

선운사는 초봄의 동백과 가을의 꽃무릇 풍경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늦가을을 붉게 물들이는 도솔천 단풍으로도 손꼽힌다. 일주문에서 사천왕문까지의 단풍이 하이라이트.도솔천과 사찰 담장 사이에 터널을 이룬 단풍과 도솔천의 잔잔한 물에 반영되는 단풍,이 두 단풍 풍경이 서로 같지만 다른 단풍 구경의 묘미를 안겨준다. 천왕문에서는 꼭 뒤를 돌아보자.붉은색 일색인 선운사 단풍과는 다른 짤막한 은행나무 터널이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다.

도솔천 길은 편안하게 이어진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민정호가 장금이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장면을 촬영한 차밭 풍경이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도솔쉼터 부근의 연못 주변에 물든 단풍 색깔도 곱다. 쉼터에서 차가 다니는 큰 길과 보행자 전용 탐방로가 갈라진다. 걷는 데는 역시 보행자 전용 탐방로다. 가파른 구간이 없는 숲길로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참당암 삼거리 부근에서 빠져 큰길로 걸어가면 오른편 바위벽에 파인 커다란 굴이 보인다. 진흥굴이다. 신라 진흥왕이 만년에 왕위를 버리고 도솔왕비,중애공주와 함께 수도했다는 천연 동굴이라고 한다. 바로 옆에 장사송(천연기념물 356호)이 있다. 수령 600년으로 추정되는 28m 키의 소나무인데 8개의 가지가 우산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이 지역의 옛 이름을 따 장사송이라 부르는데 진흥굴 앞에 있어 진흥송이라고도 한다.

좀 더 걸으면 도솔암이 나온다. 도솔암 왼편의 칠송대란 암봉의 남쪽 벼랑에 도솔암마애불(보물 1200호)이 양각돼 있다. 국내 최대 암벽불상이다.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굳게 다문 입술,하얀 석회로 봉해진 명치 끝의 감실 등이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의 비결서와 동학군에 얽힌 이야기들을 묵묵히 전해준다. 마애불 옆 나한전 뒤로 난 108계단을 올라가면 내원궁이 있다.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지장보살좌상(보물 280호)이 모셔진 지장기도도량이다. 천마봉쪽 풍광이 좋다. 내친김에 낙조대까지 가보는 것도 좋겠다. 도솔암에서 1㎞ 길이다. 철계단으로 이어져 있지만 그리 힘든 구간은 아니다. 집채만한 암봉 사이로 떨어지며 칠산 앞바다를 벌겋게 물들이는 낙조가 그림 같다.

#고창읍성 성벽길

고창읍성은 왜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세종 32년(1450년) 전라우도의 19개 군·현이 참여,3년 만인 단종 원년(1453년) 완공한 자연석 성곽이다.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한다. 성은 둘레 1684m, 높이 4~6m로 동·서·북문과 3개의 옹성,6개의 치성,성밖의 해자 등을 갖추고 있다.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밟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이 있어 매년 답성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성밟기를 할 때 머리에 인 돌은 일정 지역에 쌓아 놓게 해 유사시 석전(石戰)에 대비했다고 한다.

둥그렇게 쌓은 옹성 너머 북문인 공북루에 들어서면 왼편에 옥사와 돌무더기가 보인다. 돌무더기 옆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표지판과 답성놀이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서 있다. 성벽길은 흰색 페인트를 칠해놓은 듯 유난히 하얗게 보인다. 성안의 소나무숲을 품고 동북치를 지나 오른편으로 굽은 성벽길은 동문인 등양루에서 잠시 쉬었다가 곧바로 동치를 향한다. 성벽길은 동치에서 90도로 꺾이며 이후 북문까지 한 바퀴 돈다. 성벽이 돌 때마다 풍경이 변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높은 산등성이를 걷는 기분이라고 할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앉아 맞는 바람도 시원하다.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판소리도 발걸음의 흥을 돋워준다.

고창=글·사진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 여행 TIP

서울에서 서해안고속국도~선운산나들목~22번 국도~선운산도립공원.고창읍이나 고인돌유적지로 가려면 고창나들목에서 빠진다. 3시간 정도 걸린다. 강남고속터미널에서 고창행 버스가 오전 7시부터 16회 출발한다.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정읍역에서 내려 정읍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2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고창행 시외버스를 탄다.

고창은 풍천장어가 좋다. 고창군청 인근 용궁회관(063-562-6464)의 '갯벌풍천장어'가 유명하다. 양식장에서 1년 정도 키운 뒤 개펄에 풀어 자연상태에서 키운 장어를 쓴다. 1인분 1마리 1만7000원.우진갯벌장어(063-564-0101)는 소금구이만을 내놓는다. 1인분 식사 포함해 1만6000원,1㎏에 6만원.선운사 들머리에도 아산가든(063-564-3200) 등 장어집이 많다. 1인분 1만8000원.복분자술이 장어와 궁합이 잘 맞는다.

선운사 입구에 선운산관광호텔(063-561-3377),동백호텔(063-562-1560),선운산유스호스텔(063-561-3333)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고창군청 문화관광과(063)560-2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