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토머스 프리드먼은 옳았다.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에 대한 그의 전망에 동조하지 않더라도,'코드 레드'가 아니라 '코드 그린'을 발령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탄소우위가 경쟁력이며 그것이 곧 '아웃그리닝'(outgreening),즉 녹색성장에서 앞서나가기 위한 전략이라는 생각을 지금 이 시점에서는 피할 수 없다. 그의 예증은 다양하고 풍부하다. 도요타의 프리우스라든가 GE 운송부문 에볼루션시리즈의 성공담,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겼던 친환경적이고 에너지효율성이 높은 반도체기판 제조공장을 세우는 데 성공한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 증거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정작 주목할 점은 이 같은 성공사례들이 실은 그 배경에 국가의 명확한 정책시그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프리우스의 성공은 유가급등이라는 불확실성과 미국 정책의 미온성을 기회로 이용한 것이었고,GE의 성공 역시 기관차 등에 대한 2단계 배출기준에 따른 결과였다. 그런 맥락에서 '적절히 계획된 환경규제가 기술혁신을 자극해 비용을 감소시키고 품질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포터가설'이 나올 수 있었다.

탄소우위의 아웃그리닝 실현이 경쟁력의 요인이라면 우리로서는 지금이 IT(정보기술) 혁명 이래 최대의 도전기회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가자'는 표어를 'IT와 스마트그리드로 녹색성장을 선도하자'로 바꿔야 할 판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여유가 없다. 기술이나 경제여건,정치상황,시간 등 모든 면에서 어려움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애로는 정치적 리더십 문제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저 관심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매우 진지한 자세로 녹색성장을 나라의 진운을 좌우할 최고의 국정목표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아웃그리닝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국가 최고의 리더십이 분명한 입장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왠지 녹색성장의 목표가 정치와 행정,정부와 기업 사이에서 뚜렷하게 공유,확산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녹색성장이란 화두가 그 초기 단계부터 '한반도대운하'에 대한 논란으로 빛이 바랜 탓일까.

아직도 4대강 개발에 대한 반발과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에너지 수급이나 소비구조의 문제점 등을 이유로 여전히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가,아니 우리의 경쟁상대인 미국이나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특히 중국마저 아웃그리닝 전쟁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지만,힘을 모으기는커녕 야당이나 시민사회로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발목이 잡혀 있는 형국이다. 감시와 비판,통제는 약이 되겠지만,정치적인 이유에서든 다른 어떤 불신이나 불만 때문이든 현 정부의 녹색성장이 성과를 내지 못하도록 저지하겠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라면,그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급속하게 돌아가는 뜨겁고 붐비는 세계에서 한눈 팔 시간도 없는데,대립과 갈등으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당장 G20 개최국으로 선정된 마당에 1997년 개도국 지위만 내세워 감축의무를 회피할 수 없는 상황도 상황이지만,정작 새로운 국운개척의 장이 열리고 있는 마당에 내부갈등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현실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최근 신임 지식경제부 장관이 '온실가스 감축 너무 급하게 간다'는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기후변화 문제에 관한 한국의 책무나 녹색성장의 당위성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겠으나 그 과정 역시 우리 산업이 감내할 수 있는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야 장기적인 아웃그리닝 전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웃그리닝을 위한 잘 설계되고 부처 간에 적절히 조율된,현명한 환경규제 정책이 필요한 때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