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법의 시행을 앞두고 연대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 법은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목표로 제정됐지만 그 시행이 13년째 유보돼 왔다. 그런데 제정 당시에도 이를 바로 시행할 수 있는 노사 분위기가 아니었고 지금도 그 때의 분위기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시행을 불과 두 달 앞둔 현재 이를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더욱 증폭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사안은 물론 별개다. 이들이 하나로 묶인 것은 법 제정 당시 노사가 주고받기 식으로 기이하게 타협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당연히 두 사안을 분리해 처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최근 여당이 복수노조 시행을 유보할 수 있다는 방침을 세운 듯 하나,현재 노조의 행태나 정치권의 조정 능력을 보면 분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선 회사가 노조 업무를 전담하는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이 없다. 물론 외국에서도 이런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재론할 여지가 없는 사안이다.

반면 복수노조는 많은 선진국에서 허용되고 있다. 문제는 현재 한국의 노사관계가 선진화됐다고 보기에는 노조활동이 매우 전투적이라는 데 있다. 지금 당장 복수노조를 허용하면 산업 현장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노동기구(ILO)의 권고와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시 예상되는 불이익 제거 등의 이유로 복수노조를 허용해야 한다면,산업 현장의 혼란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장치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부 장관이 강구하도록 돼 있는 복수노조의 창구 단일화는 물론이거니와 다음의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병원 · 항공 · 철도 등의 이른바 필수 공익사업장에만 허용되는 대체근로를 일반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해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을 최소화해야 한다. 대체근로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회사는 생산 손실을 우려해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현재 2인 이상이면 노조를 설립할 수 있어 대표성이 없는 노조가 쉽게 조직될 수 있으므로 복수노조 허용 시 우려되는 노조의 난립을 막기 위해 그 설립 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노조 설립을 위한 최소 인원을 상향 조정하고 근로자 수에 따른 최소 비율을 정해 요건을 강화하는 것이다.

셋째,현재 최장 2년으로 돼 있는 단체협약의 유효 기간을 늘려 잦은 교섭과 갈등으로 인한 비용을 줄여야 한다. 단체협약의 유효 기간을 더 늘리고(예 3~5년) 최단 유효기간(예 2년)을 설정하는 것 등이다.

넷째,현재 부당노동행위는 사용자에만 적용되고 노조에는 적용되지 않는데,노조의 부당노동행위를 신설해 대칭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노조가 회사에 전임자 임금지급을 강요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교섭을 거부 또는 해태하는 경우에는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이다.

마지막으로 사측의 직장폐쇄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다. 현재는 노조의 합법적 쟁의행위 개시 이후에만 직장을 폐쇄할 수 있어 회사가 노조의 불법파업에 대응하기 어렵다. 직장폐쇄 요건을 완화해 사측의 대응능력을 높이면 노사간의 원만한 협상을 촉진할 것이다.

산업 현장의 평화는 한동안 우리 경제의 도약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근로자를 가장 잘 보호하는 것은 노조가 아니라 근로자에 대한 기업 간 경쟁이라는 사실이 널리 인식될 때 평화는 비로소 정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