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들이 10년 만에 전열 재정비에 나섰다. 계열사 간 합병이나 업무조정을 통해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빅딜이 진행된 지 정확히 10년 만이다. 1999년에는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비(非)자발적,축소지향적으로 진행됐지만 이번 사업 재배치(rearrangement)는 자율적,그룹 내에서 진행된다는 점이 다르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거친 각 그룹 계열사들이 10년간 진행해온 신사업을 중간 정리하고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컨버전스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다.


합치고 공격 앞으로

유 · 무선 통신시장의 경계가 급속히 허물어지면서 통신업체들의 합병이 가장 두드러진다. KT와 KTF가 지난 6월 합병한데 이어 LG텔레콤,데이콤,파워콤 등 통신 3사도 내년 1월 중 합병하기로 했다. 자산 8조원,가입자 1360만명을 보유하는 종합 유무선 통신사를 만들어 SK텔레콤 및 KT의 양강구도를 허물어뜨리겠다는 전략이다. 이에따라 SK텔레콤과 브로드밴드 간 합병도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SDS와 네트웍스 간 합병은 규모를 키워 해외로 나가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IT 시스템사업을 하는 삼성SDS와 통신업무를 하는 네트웍스를 통합함으로써 토털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삼성SDS는 합병 후 2015년 글로벌 톱10 서비스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앞서 삼성은 카메라를 만드는 디지털이미징을 삼성전자로 내년 초 흡수 합병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또 롯데그룹은 호남석유화학 · 케이피케미칼을 통합키로 했고 한화그룹은 한화리조트 · 한화개발 · 한화63시티 등 레저관련 3사를 합병해 덩치를 키우기로 했다. 포스코도 철강생산 자동화 기술을 갖춘 포스콘과 이를 운영하는 소프트웨어업체인 포스데이터를 합쳐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SK그룹에서는 SK네트웍스가 워커힐과 합병해 시너지효과를 내겠다는 계획을 밝혀 놓은 상태다.

그룹체제의 강점 극대화 전략

이 같은 대기업 그룹 계열사 간 합병은 공격경영을 위해 '프런트라인'을 정비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세계적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해외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실적을 낸 국내기업들이 그룹체제라는 한국 특유의 강점을 앞세워 치고 나가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외환위기 이후 10여년간 성장동력을 찾아 개별적으로 달려 왔던 계열사들을 그룹이라는 한차원 높은 수준에서 합병 등을 통해 재배치함으로써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그룹 내 합병에는 외부업체 인수합병(M&A)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지배력 확대를 위해서는 다른 업체를 인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지난해 이후 공격적으로 M&A를 해온 업체들이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자 내부통합을 통해 체력을 보강하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다. 내부통합은 재무적 부담이나 문화 통합에서 외부기업 인수보다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룹 내 사업 재조정을 통해 견고한 체력을 갖춤으로써 불확실성에도 대비할 수 있는 효과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블딥이나 트리플딥 같은 얘기가 나오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혹시 닥쳐올지 모르는 위기에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시장이 확대되면 강화된 체력으로 공격경영에 나서고, 위축되면 효율화한 체력으로 버텨나가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김용준/김태훈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