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사는 친구가 아흔 살 가까운 장모께서 틀니를 잃어버려 식사를 잘 못하신다고 걱정하는 걸 들었다. 나이 든 분들의 경우 틀니 맞추는 일이 쉽지 않은데 잃어버린 것은 다행히 잘 맞게 만들어져 큰 불편 없이 쓰셨다는 것이다. 치과에 가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건강한 치아가 오복 중 하나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최근 30~40년 새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난 요인을 꼽자면 예방주사 접종으로 줄어든 영아사망률과 좋은 영양 섭취,가까워진 의료서비스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치과진료의 혜택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이가 아파 고생해본 사람은 통증으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소화도 안 돼 괴로웠던 일을 잊기 어려울 것이다.

사자 같은 맹수도 나이 들어 이가 빠지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가속화된다지만 사람의 생로병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도 치아다. 태어난 지 6개월쯤 지나면 젖니가 돋아나 식구들을 기쁘게 하고,6년 정도 지나 젖니를 영구치로 갈기 시작하면 성장단계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무사히 지나고 있다는 표시로 받아들여진다.

20세 전후 사랑니가 나면서 겪는 아픔은 이제 다 자랐다는 신호가 되고,성년을 지나 노년기로 접어들며 하나둘씩 흔들리다 빠지는 모습은 어쩔 수 없는 삶의 유한함을 전한다. 임플란트 등 최신 의료기술의 효과는 대단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젖니는 20개이고,간니는 사랑니(4개)까지 총 32개인데 보통 사랑니는 별 소용도 없이 문제만 일으킨다고 빼버리는 수가 많다. 사랑니를 제외하면 송곳니 4개,앞니 8개,어금니 16개로 약분하면 1:2:4의 비율을 보인다. 송곳니는 고기를 먹는 데 필요하고,앞니는 야채를 씹는 역할을 하고,어금니는 곡류를 먹는 데 적합하다고 한다. 따라서 육류와 야채,곡류를 치아 구조대로 1:2:4의 비율로 섭취하는 게 자연의 섭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치아의 그런 구조 자체가 오래 전 식량사정에 따른 음식물 섭취 행태를 반영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치아구조에 맞춘 비율로 음식물을 섭취하는 건 수동적이자 과거지향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고기도 송곳니로 뜯어먹는 게 아니라 어금니로 씹어먹을 때가 더 많다. 다지거나 잘게 썰어 요리하고,큰 덩어리를 통째로 다룰 때도 연육제 등을 사용해 부드럽게 만드는 까닭이다. 이런 방식은 오래 전 삶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치아구조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현실에 적응하는 능동적 자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송곳니와 어금니 같은 인체구조만 그런 것도 아니다. 기업과 행정기구를 비롯한 조직도 과거 어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뒤 조직이 안정궤도에 들어가면 그만 그대로 굳어지기 쉽다. 어떤 조직이든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환경과 현재 상태,곧 조직구도와 체계가 잘 어울리는지 늘 의문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김선구 < 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sunkoo2000@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