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편법이 원칙 행세를 하고,원칙이 시의적 예외와 편법에 밀리는 비정상적인 사태에 무감각해졌다. 더욱이 정치적인 목적이나 자신들의 입장에서 거창한 명분을 내세워 편법을 합리화하며 원칙을 가차없이 묵살하는 일이 일상화되다시피 한다. 교육분야에서는 최근 정부의 사교육 대책,외고 문제,교원평가제,교육세 폐지 철회 문제 등이 이에 해당한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교육 대책은 원칙과 편법을 비정상적으로 도치시켜 버린 대표적 경우이다. 이는 사교육을 억제하는 강력한 정책이 공교육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정작 해법은 대선 공약인 자율과 경쟁의 원칙을 충실히 지켜 학교교육을 제 궤도에 올리는 데 있는 것이지,거꾸로 사교육을 통제한다고 해서 공교육이 제자리를 잡는 것은 아니다. 사교육의 팽배 원인이 현행 학교교육이 다양한 교육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데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외국어고를 자율고로 전환시키겠다는 발상도 자율과 경쟁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외고가 사교육의 주범이라는 시각은 표층적인 것이다. 현 평준화 체제 아래서 그나마 수준 높은 교육 욕구를 만족시켜준 외고를 말살하겠다는 것은 원칙에 어긋나는 행태이다. 오히려 외고 같은 학교가 많이 나오도록 하는 정책적 뒷받침을 하는 것이 자율과 경쟁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

교원평가제 역시 경쟁력과 단위학교의 책무성 강화라는 원칙에 맞게 추진되어야 한다. 교원평가를 일부 교원들의 집단이기주의에 얽매여 유보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원칙을 어기는 것이다.

1958년 처음 도입됐다가 몇년 뒤 폐지된 교육세는 1980년 국보위가 교육재원을 확충하고자 이른바 '7 · 30 교육개혁조치'로 다시 도입됐다. 1981년 당시 제정된 교육세법은 5년 시한부의 임시목적세였으나,두 차례 시행령 개정을 통해 1991년 이후 영구세로 전환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작년 9월 목적세인 교육세를 폐지하기로 한 것을 '2009년 세제개편안'에서 기획재정부가 향후 3년간 유예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원칙을 지키려다 당국이 편법으로 돌아선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교육재정 확보라는 명분을 가지고 교원단체와 일부 교육계 인사의 저항과 로비가 있었을 것이다.

교육재정 확보라는 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필자도 교육계에 몸담은 사람이니,이번 교육세 폐지 철회에 반대하는 것은 자칫 무고한 오해를 받기 알맞은 형세이다. 그러나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며 30년 동안 시행한 목적세를 계속 존치하겠다는 발상이 원칙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가르쳐야 할 교육계가 취할 태도인지 깊이 따져 보아야 한다. 이를 '교육계의 개가'라고 자찬할 일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3년간 다시 '유예'시킴으로써 교육당국은 자신들의 집권기간 동안엔 면죄부를 은밀하게 받아간 점이다.

교원평가 문제,교육세 폐지 철회 등 일련의 원칙과 편법의 전도는 언제나 원칙에 앞서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을 내세우는 경우에 나온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그런 점에서 무엇보다도 당국이 흔들리지 말아야 할 '원칙'은 원칙과 편법에 대한 입장을 확고히 하는 일이다. 원칙을 거창한 명분과 결부시키면 안 된다. 그러면 사회는 원칙이 실종돼 혼란에 빠진다. 교육세를 징수한다고 교육의 자율성 확보라는 거창한 명분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재정도 이 법이 제정된 1980년대 초와 확연히 다르다. 만약 녹색성장을 위한 환경세,양성 평등을 위한 여성세,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세 등 무수히 많은 목적세를 신설해 무한 존치한다면 이를 정상적인 국가 재정이라 할 수 있겠는가.

김정래 < 부산교대 교수·교육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