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우리에겐 기회"

"우리 브랜드 `MCM'이 딱 적절한 시점에 미국 최고급 백화점인 `삭스 핍스 애비뉴(Saks Fifth Avenue; 이하 삭스)'에 입성해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아시아 기업들엔 좋은 기회인 셈이죠."

2005년 독일의 명품 브랜드 MCM을 인수한 성주그룹 김성주(53.여) 회장은 우리나라 유통.패션업계의 역사를 새롭게 써가는 인물로 통한다.

김 회장은 2007년 미국 블루밍데일 백화점 14개 매장에 MCM을 한꺼번에 입점시킨 데 이어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전 세계 35개국에서도 속속 새 시장을 개척했다.

지난달 중순에는 미국 최고의 명품 백화점인 삭스 15개 점에 MCM을 동시 입점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지난 13일 서울 청담동 본사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한 김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에서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지난 한 달 동안 삭스에서 올린 실적을 먼저 물어보았다.

"진열된 상품 가운데 판매된 비율인 소진율이 오프라인에서 20%, 온라인에서는 35%로, 다른 브랜드들보다 높아 벌써 재주문에 들어갔습니다.

2주 만에 우리 브랜드가 삭스에서 최고의 브랜드가 된 겁니다.

"
이 같은 성공 비결에 대해 그는 글로벌한 디자인과 품질에 중저가 전략을 취한 점을 꼽았다.

루이 뷔통이나 버버리, 펜디 같은 명품 브랜드처럼 부유층이 사는 곳에 직영매장을 내고 이탈리아산 원단으로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최고급 상품을 만들지만, 가격만큼은 20~30% 낮게 책정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일반적인 소비자들은 비싼 제품을 더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한다는 경향이 있지만, 이런 경기 침체기에 소비자들은 가격보다는 `가치'를 더 중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금이 기회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금 많은 유럽회사들이 파산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우리는 상하이에서 매장 하나를 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했지만, 지금 세계의 패션 중심지에 공간이 널려 있어요.

프라다나 에스까다, 베르사체는 일본에서도 철수했죠."
그러나 김 회장은 기존의 명품 브랜드 이미지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 흐름에 맞는 패션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명품 산업은 우리 소비자들을 교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회적인 나눔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사회에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한단 말이죠. 허영이 아니라 진짜를 가르쳐야 합니다.

"
이 같은 철학은 밑바닥부터 몸소 부딪히면서 사업을 배운 그의 독특한 이력에 바탕을 둔 듯 보였다.

국내 굴지의 에너지 기업인 대성그룹의 막내딸로 태어난 그는 1979년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원을 수료한 뒤 블루밍데일백화점에서 월 18만원을 받으며 일을 배웠다.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 없이 3년 동안 뉴욕 블루밍데일백화점에서 일했어요.

그 일은 제 생애에서 가장 좋은 배움의 과정이었죠. 두려워하지 않고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면서 자신감과 용기, 적응력을 길렀습니다.

"
이런 이력 때문에 여성 기업인과 중소기업에 대해 갖는 애정도 남다르다.

그는 "그동안 정부의 보호를 받는 재벌의 독점이 커 중소기업이 성장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대부분의 사업이 술자리나 학연, 지연 등을 통해 이뤄져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웠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내 꿈은 중소기업과 여성들에게 `할 수 있다'는 정신을 심어주고 `당신의 활동 무대가 단지 한국만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들의 사회적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성주여성재단'을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설립할 계획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지도 오래됐다.

"그동안 50개 이상의 NGO를 도왔고, 앞으로 더 도울 계획입니다.

명품 산업은 사회에서 가장 모범적이며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북한의 여성들과 어린이들도 돕고 싶습니다.

"
칭기즈칸의 도전 정신을 이어받은 `칭기즈킴'이라고 자신을 부르는 그의 꿈은 세계 패션업계를 호령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꿈이 단지 꿈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이유경 기자 mina@yna.co.kry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