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만 하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일 줄 알았다. 최종합격 통지를 받던 날엔 세상이 온통 내 것 같았다. 입사하고 몇 달은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는 뿌듯함과 월급받는 즐거움에 어깨를 펴고 다녔다. 신입사원 교육 중 지옥훈련에도,툭하면 이어지는 야근과 회식에도 고단한 줄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회의와 갈등이 치솟기 시작했다. 제대로 가르쳐주진 않고 틀리면 그것도 모르냐고 몰아세우는 대리,종일 별 말 없다가 퇴근시간 무렵 일을 던지면서 내일 아침까지 해놓으라는 과장을 대하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이렇게 살자고 취업했나 싶다.

말로는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면서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낼라치면 '튄다'며 흘겨보는 것도 견디기 힘들다. 분명 더 나은 방법이 있는데 자기식대로 하라고 우기는 과장을 보면 머리가 터질 것 같다. 큰 맘 먹고 부장이나 임원에게 털어놓으려 하면 "뭘 그까짓 걸 갖고.우리 땐 더했다"며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죽겠는데 비루할 만큼 눈치 보며 일하던 과장 · 부장이 구조조정 당하는 걸 보면 '내 앞날은' 싶어 눈앞이 캄캄해진다. 사표 내고 유학 가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는 동료를 보면 부럽기 짝이 없다. 모든 게 못마땅하니 소화도 안되고 머리카락은 빠진다. 회사만 안가면 살 것 같다.

회사도 자신도 싫으니 의욕은 사라지고 매사에 시큰둥하고 냉소적이 된다. 국내 직장인 대부분이 입사 초기 이런 '직장인 사춘기'를 겪는다는 소식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에게 물어본 결과 응답자 86.6%가 초년생 시절 비슷한 증후군에 시달렸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입사 3년차 때 가장 심하고 다음은 1년차 2년차 순이라고 한다. 증상은 이직 고려와 무기력증,신경과민 등.사춘기는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도기다. 정서가 불안정해지면서 구속과 간섭이 싫고 주위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건 자아가 강해지는데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다.

10대에 만나는 사춘기는 강(江)같아서 무사히 건너면 전혀 다른 세계,한층 성숙한 단계로 접어들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직장인 사춘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게 아닌데'에서 비롯되는 온갖 울화와 반감은 일종의 성장통일 수 있다. 살면서 발전하자면 내뜻과 다른 현실에 적응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때로는 참는 것도 힘이 된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