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고 있는 말 중에는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 많다. 정(情), 한(恨), 얼, 하느님 등등. 그 중에 ‘우리’란 말이 있다. ‘우리’에는 우주를 바라보는 우리들만은 독특한 시각이 응축되어있다.

가정에 가면 사진첩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빛바랜 사진들이 차분히 정리된 추억의 사진첩. 사진속의 인물들은 한명이건 단체이건 차렷 자세를 하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수학여행간 불국사 앞에서, 졸업식장 앞에서, 동료들과 군부대에서, 설악산과 제주도에서,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같은 포즈를 취한다. 인물은 같고 배경만 달리한다. 심심할 정도로 얼굴 표정도 잘 안보일 정도로 배경 속에 묻혀 매번 같은 자세를 반복하고 있다. 배경을 찍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연유일까?

반면 일반 서양인들의 개인 사진은 동작과 표정 위주이다. 수영장에서 다이빙하는 장면, 바비큐 하는 장면, 키스하는 장면 등 사진 가득 인물 위주여서 어디서 찍었는지 모를 정도다.

이런 동서양의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생각보다 보다 뿌리가 깊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은 사람의 눈높이 그림이다. 서구 종교 성화(聖畵)에 등장하는 신이나 천사의 그림에서야 사람 눈높이 보다 올려 우러러 보는 앙각(仰角) 구도를 찾을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는 신을 올려다보는 그림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원 김홍도의 서당도나 안견의 몽유도원도,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내가 소장하고 있는 혜원 신윤복의 ‘칠종칠금 고사도(故事圖)’는 하나 같이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관점이다. 이런 구도는 육신의 눈의 구도가 아니라, 영혼의 눈의 구도다. 인물과 주위 배경과의 관계를 바라보며 전체로부터 나를 파악하는 것을 중시한다. 즉 어떠한 입장(立場) 속에서의 인물인가, 커다란 우주 장(場) 속의 일부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심리학자들이 실험한 결과 또한 흥미롭다. 중앙에 주인공 인물이 행복해서 웃는 표정으로 서있고 주위에 둘러싼 친구들도 같이 행복한 웃는 표정이 그림 A, 주인공의 표정은 그대로이고 주위 사람들의 표정만 찡그린 그림이 B일 때, 서양인들은 십중팔구 A, B 그림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한다. 중앙의 주인공이 같은 표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인은 B그림 속의 주인공은 불행하다고 해석한다. 주위 친구들이 불행한데 혼자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양인의 의식구조는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지만, 동양인은 주변과 나의 연관 속에서 바라본다.

영어권 초등생 교과서는 나(I)로 시작하지만, 우리 교과서는 나, 너, 우리로 시작한다. 혹자는 동서양의 차이는 성장하면서 받은 교육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다. 교육은 동서양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서양 유치원생들이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은 사람의 눈높이에서 그린 그림이 많다. 눈으로 보이는 그대로 그린다. 동양 아이들 그림은 다르다. 마치 비행기나 나무위의 새가 바라보고 그린 것처럼 하늘에서 아래를 바라본 그림이 많다. 전체 속의 인간을 그리고 있다. '우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이처럼 태어나면서 동서양의 시각차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으니 신비하기만 하다.

서양인들의 우리(WE)는 나(I)의 집합체다. ‘사이언스(科學: science)’란 단어의 어원도 '쪼개다, 분석하다'이다. 과학적 사고방식이란 바로 분석적 사고방식을 말한다.

동양은 전체 속에서 나를 바라본다. ‘우리’란 ‘전체 속의 나’란 뜻이다. 전통적인 현무경, 천부경, 음양오행, 천간지지 등이 뜻하는 바도 역시 시간, 공간, 차원 우주 속의 ‘나’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관계가 있다. '우리'의 범위는 한정이 없으니 개개인의 역량이나 관점, 업보에 따른 우주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우리’ 중의 ‘우리’가 한민족인 우리 아닌가 한다. 아버지조차 ‘우리 아버지’라고 하지 않던가. 아무리 동양이라 해도 거의 ‘나의’ 아버지다. 아버지, 어머니조차 우리가 되는 우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무의식중에 쓰고 있는 ‘우리’란 모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과 같은 표현이 아닐까. ‘우리’가 우리 민족으로부터 나왔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널리 우주를 보고 그 속에 나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엄청난 정신문화유산을 물려받고 있는 셈이다.

철저히 혼자인 사람은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다. 이미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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