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마이크로크레디트(소액 신용대출)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미소(美少)금융 사업과 별도로 은행별 미소금융재단 설립에 나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동시에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하나은행이 주도한다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려는 복안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국민 · 신한 미소금융재단 설립

국민은행과 신한금융그룹은 'KB미소금융재단'과 '신한미소금융재단'을 각각 설립한다고 11일 발표했다. 국민은행은 우선 100억원을 출연한 뒤 향후 500억원까지 늘릴 예정이다. 1인당 대출 규모,금리 등은 정부 주도의 미소금융중앙재단과 협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국민은행은 은행 퇴직자 등을 활용해 이르면 올해 말까지 설립을 마칠 계획이다. 김영국 국민은행 시장연구부 차장은 "경기침체로 어려운 영세 자영업자를 돕기 위해 상반기부터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검토해 왔다"고 말했다.

신한금융그룹은 신한은행과 신한카드,신한금융투자 등 계열사가 공동으로 500억원을 출연한다. 영세 자영업자 지원은 물론 영농사업 및 낙후지역의 사회간접자본 사업 지원,직업교육 등을 병행해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새 모델을 제시한다는 방침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창업자금을 지원한다면 단순 대출에서 한발 더 나아가 경영 컨설팅을 해주는 등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저소득층 장학사업도 확대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하나희망재단'을 설립해 가장 먼저 마이크로크레디트에 뛰어든 하나은행은 사업 확대를 꾀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지난달 서민금융 지원 업무를 총괄하는 서민금융실을 신설해 금융소외계층을 지원해 왔고 재단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

은행권이 잇따라 마이크로크레디트에 나서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홍재범 부경대 경영학과 교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제출하는 사업계획서를 근거로 성공 가능성을 판단하고 대출 여부를 결정하기란 매우 어렵다"며 "전문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출자액 놓고 기싸움

은행들이 저마다 미소금융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금융권과 대기업들이 공동 설립키로 한 미소금융중앙재단 출연금을 놓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매년 은행들이 배당받는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을 활용해 '미소금융중앙재단'에 2015년까지 2500억원을 출연하기로 18개 은행장들은 지난달 말 합의했으나 세부안을 놓고 이견이 불거지고 있다.

현재 부실채권기금 잉여금 배당비율은 하나은행이 12.1%로 가장 많고 △국민 5.6% △신한 10.3% △우리 8.8% △기업 4.2% △농협 3.5% △산업은행 10.5% 등이다. 배당비율대로 출연금을 부담할 경우 하나은행은 시중은행 가운데 자산순위 4위에 불과한 데도 은행들 중에서 가장 많이 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반면 국민은행은 1위인 데도 5.6%만 부담하게 된다.

SC제일은행의 경우 부실채권 잉여금을 배당받지 않아 출연금 분담에서 아예 빠진다. SC제일은행 부실채권은 정리금융공사로 넘어갔다 재매각돼 배당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SC제일은행이 자기 돈으로 미소금융중앙재단 출연금을 내놓을지 관심이다.

김현석/유승호/김인식 기자 usho@hankyung.com


◆미소금융중앙재단=정부가 저소득·저신용계층에 창업·사업자금을 무담보로 빌려주기 위해 올해 말까지 설립하는 재단.향후 10년간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 기업의 기부금 약 1조원과 은행의 휴면예금 7000억원,은행권 기부금 2500억원,증권유관기관 기부금 500억원 등 2조원을 재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