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가 늘어나면 물가는 떨어진다?

[경제교과서 친구만들기] (32) 필립스곡선
뉴질랜드 출신의 경제학자 올번 윌리엄 필립스(Alban William Phillips)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필립스는 1914년 뉴질랜드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16살이 되던 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이웃나라 호주로 건너가 낮에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밤에는 틈틈이 전기공학을 공부했다.

그는 광산,영화관 등 다양한 곳에서 일을 하였는데 한때는 악어사냥꾼으로 나서기도 하였다.

1937년 호주를 떠나 중국,러시아 등지를 여행하던 필립스는 결국 영국에 정착하게 되지만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공군에 들어가 다시 동아시아로 가게 된다.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의 포로가 된 그는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32살이 되던 1946년에 런던정경대학(LSE)에 입학하게 되지만 그가 맨 처음 공부한 것은 경제학이 아닌 사회학이었다.

하지만 필립스는 곧 사회학에 흥미를 잃고 경제학 공부에 빠져들게 된다.

그동안의 다양한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영국경제를 분석하는 연구들에서 다른 경제학도들에 비해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평을 받았다.

필립스는 전기공학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영국경제를 분석하기 위한 아날로그 컴퓨터를 개발하는 등의 연구로 인정받기 시작해 1958년에 드디어 런던정경대학의 정식교수로 임명된다.

바로 이 해에 필립스는 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의 관계를 밝혀낸 논문을 발표하여 자신의 명성을 널리 알리게 된다.

'경제교과서 친구만들기'에서는 지난 2주 동안 인플레이션과 실업에 대해 살펴보았다.

인플레이션과 실업은 여러 가지 폐해를 불러오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나 골칫거리이고,이 둘의 정도를 나타내는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은 정책담당자들이 언제나 신경을 쓰는 중요한 경제지표이다.

하지만 필립스 이전에는 인플레이션과 실업에 대한 연구가 따로따로 이루어져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필립스는 1861~1957년 사이의 영국의 명목 임금상승률과 실업률을 살펴본 결과 실업률이 낮은 해에는 명목 임금상승률이 높고,실업률이 높은 해에는 명목임금 상승률이 낮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필립스가 물가상승률 대신에 명목 임금상승률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명목 임금 상승은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므로 이는 곧 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에 역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에 다른 학자들이 명목 임금상승률을 물가상승률로 대체하여 필립스의 연구결과에 이론적 토대를 부여하였고,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의 역관계를 그래프 상에 나타낸 곡선은 그의 이름을 따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경제교과서 친구만들기] (32) 필립스곡선
위의 <그림>은 필립스곡선을 나타낸 것으로 y축은 물가상승률,x축은 실업률을 나타낸다. (경제학에서는 가격과 관련된 변수들을 y축에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우하향하는 필립스곡선은 경제정책에 있어 큰 의미를 지닌다.

보통 교과서에서는 필립스곡선이 정부가 물가안정과 실업문제 해결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것은 힘들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기술한다.

A점과 같이 실업률이 높은 상황에 있을 때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과 확장적 통화정책 등의 총수요관리정책을 사용하여 실업률을 B점 수준으로 낮춘다고 가정해보자.

B점에서는 실업률이 낮지만 대신 물가상승률이 A점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

정부가 실업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물가상승률이 높아지고,물가안정을 추구하면 실업률이 높아진다.

이는 결국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의 어려움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물가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에 위의 그림과 같이 확실한 역의 관계가 성립한다면 정부가 필립스곡선상의 조합 중 하나를 선택하여 둘 중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만약 정부가 실업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다면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감수함으로써 실업률을 낮출 수가 있다.

반대로 물가안정을 목표로 한다면 어느 정도의 실업률 상승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1960년대까지는 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의 상충관계(trade-off)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필립스곡선은 정부정책에 있어 일종의 매뉴얼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1970년대에 물가상승과 실업률상승이 함께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발생하면서 필립스곡선 이론은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물가상승률이 계속 높아져도 실업률은 낮아지지 않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은 기존의 필립스곡선으로는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밀턴 프리드먼(Miltion Friedman)과 에드먼드 펠프스(Edmund Phelps)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사이에 존재하는 상충관계는 단기에만 가능한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즉,우하향하는 기존의 필립스곡선은 단기의 필립스곡선이라는 것이다.

현재 경제의 실업률 수준이 4%이며 물가상승률은 3%인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 상황에서 정부가 확장적 재정(또는 통화) 정책으로 수요를 늘려 실업률을 2%까지 낮추었지만 명목임금이 상승하여 물가상승률은 5%로 높아졌다고 가정해보자.

이렇게 단기에는 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에 분명 상충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명목임금은 상승을 하였지만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실제로 소득이 늘어난 것이 없음을 알게 되어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게 된다.

임금 상승은 기업들의 임금 부담을 늘려 고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실업률은 종전의 4% 수준까지 다시 상승하게 된다.

결국 실업률은 다시 증가하였으므로 정부는 확대정책으로 물가만 높인 셈이 돼버린 것이다.

정부가 계속해서 확대정책을 쓴다면 단기적으로는 실업률이 감소하겠지만 또다시 물가가 높아져 실업률은 4% 이하로 낮추지 못하면서 물가만 상승시키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경제교과서 친구만들기] (32) 필립스곡선
결국 장기에는 실업률이 4% 수준에서 유지가 되므로 장기의 필립스곡선은 위의 그림과 같이 수직으로 나타난다.

위의 예에서의 4%의 실업률과 같이 경제가 장기적으로 도달하게 되어 있는 실업률을 자연실업률(natural rate of unemployment)이라 부르는데 자연실업률에 대해서는 대학의 경제학 과정에서 자세히 배울 수 있다.

김훈민 KDI 경제정보센터 전문원 hmkim@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