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 진통제 타이레놀을 복용한 지역 주민 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 결과 누군가가 타이레놀의 캡슐에 치명적인 독극물을 주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제조사인 존슨앤드존슨에 시카고 지역에 배포된 타이레놀을 회수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존슨앤드존슨은 예상을 뛰어넘어 시카고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 배포된 약 3000만병,1억달러 상당의 타이레놀을 전량 회수했다. 그 결과 존슨앤드존슨은 회사 존립의 위기를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수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2002년 발생한 일본의 유키지루시식품 사례는 진실의 은폐가 기업에 얼마나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일본 햄 · 소시지 시장 점유율 86%를 자랑하던 일본 제1의 육가공업체인 유키지루시식품은 수입 쇠고기를 국산으로 둔갑시키는 등 소비자를 기만하는 우를 범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초기 잘못을 시인하기보다는 사실을 축소하고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유키지루시 브랜드는 믿을 수 없다는 소비자의 불신이 팽배해지면서 불과 1개월 만에 도산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일찍이 캐롤 미국 조지아대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4단계론을 제기한 바 있다. 그 첫 단계는 기업이 값 싸고 질 좋은 제품을 생산,공급하는 경제적 책임이다. 다음은 준법경영을 철저히 하는 법적책임의 단계다. 세 번째는 도덕적이고 투명한 윤리경영의 단계다. 마지막이 자선,기부 같은 사회적 책임의 단계다. 기업이 성장하고 국가경제가 성숙해질수록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커지게 된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기업의 책임은 커지지만 그만큼 소비자의 신뢰도 높아지게 된다.

지금 선진 일류 기업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비자,NGO,지역사회,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구축하고 그들이 기대하고 있는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 수준은 낮다.

기업이 경영 현안에 대해 이해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인력,시간,비용의 부담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해관계자와의 대화를 통한 사회적 책임의 완수는 기업과 사회가 상생할 수 있는 바람직한 성장전략이다. 이해관계자들은 대화를 통해 기업이 처한 입장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고,기업은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신뢰와 이미지 개선이란 과실을 얻을 수 있다. 기업과 이해관계자 간 소통이 원활해지고 상호 이해와 신뢰가 쌓인다면 우리 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더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상열 <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sangyeolkim@korcha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