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명종 때의 관리 노극청이 일을 나간 동안 그의 아내가 은 12근을 받고 현덕수라는 사람에게 집을 팔았다. 워낙 가난해서 호구지책으로 한 일이었으나 이 사실을 전해들은 노극청은 현덕수를 찾아가서 3근을 돌려주려 했다. 전 주인에게서 9근에 집을 사서 수리하지도 않았는데 3근을 더 받은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였다. 현덕수는 이미 매매가 이뤄졌으므로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다 결국 3근을 절에 시주했다. '고려사 현덕수전'에 나오는 얘기다.

조선 영조 때 호조 서리였던 김수팽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역시 서리로 일하던 동생 집에 들렀다가 염료로 가득찬 통들을 보고 까닭을 묻자 동생은 아내가 염색으로 살림을 돕고 있다고 대답했다. 김수팽은 염료를 모두 쏟아버리며 동생을 이렇게 꾸짖었다. "우리 형제가 나라의 녹을 먹으면서 이런 장사를 하면 도리가 아니다. 더구나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을 해서 먹고 살란 말이냐."

지위가 높건 낮건 공직에 있는 동안 재산을 늘리지 않는 것이 관료사회의 법도였음을 알려주는 사례들이다. 물론 예외는 있었지만 그 법도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강조하는 도덕률과 결합돼 감시의 눈이 없어도 웬만큼 지켜졌다고 한다. 도덕의 기준과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인가. 감사원 감사와 총리실 암행감찰이 수시로 실시돼도 공직자 비리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선 세무공무원들이 '카드깡'업자들로부터 금품을 받아오다 덜미가 잡혔다는 소식이다. 신용카드 조기 경보시스템을 이용해 불법 카드깡을 적발하고도 돈을 받고 덮어버렸다니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다. 그렇지않아도 검찰이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국가 예산과 보조금 1000여억원을 빼돌린 공무원 등 150여명을 구속기소한 마당에 이런 얘기까지 들리니 국민들 속만 더 뒤집어지게 생겼다. 어떤 공무원은 생계가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써야할 세금으로 차를 사고 해외여행을 갔다왔는가 하면 병사들의 양식을 가로채서 시중에 내다 판 군인까지 있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관리는 바른 몸가짐과 청렴한 마음으로 청탁을 물리쳐야 하는 것은 물론 씀씀이까지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는 못할 망정 걸핏하면 나랏돈 빼돌리는 일부 공직자들의 몰염치한 행태를 보고 있자니 답답하기만 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