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상구 삼락동에 있는 경성산업의 김경조 대표(53)는 작업환경 특성상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숏볼(shot ball)' 제조업에 뛰어들어 회사를 기술집약형 우량기업으로 키워냈다.

숏볼은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등을 성분으로 하는 원형 구조의 미세 알갱이. 자동차 및 선박 부품 등을 강하게 두들겨 이물질을 제거하는 연마제로 사용된다. 경성산업은 현대 · 기아자동차 등 우수 고정 거래처를 확보한 데 이어 직경 0.1㎜ 이하 분말 수준의 숏볼 개발에 성공,국내외 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종갓집의 종손며느리로 1년에 13번의 제사를 지내야 하는 김 대표는 "사업에 뛰어든 후에도 집안일에 손을 놓은 적은 없다"며 "사업과 가사를 병행해야 하는 여성기업인으로서 회사 성장에 목표치를 정해놓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것이 이만큼이라도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했다.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4시간인 그는 가사노동으로 뺏긴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억척여성.현재 6명의 생산직원만을 두고 있는 김 대표는 틈틈이 시간을 내 경성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까지 수료했다.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한 뒤 15년간 전업주부로 있던 김 대표는 1997년 5000만원을 밑천으로 숏볼제조 공장을 차렸다. 당시 제강회사에 다니는 남편 친구가 숏볼 원료인 폐자재를 공급해주겠다며 창업을 권유해서였다. 공장 165㎡ 규모에 직원 5명으로 출발,숏볼을 창원 등 자동차 부품업체에 납품해 연 2억원 남짓의 매출을 올렸다.

김 대표는 폐자재를 단순 가공한 숏볼 생산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제품 차별화에 착수했다. 일본 숏볼제조업체를 견학,벤치마킹대상으로 삼는 한편 지역 대학 등과 산학 연계를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숏볼 개발에 나섰다. 현재 철,알루미늄,스테인리스 등 각종 소재로 직경 0.1~2㎜까지의 다양한 숏볼을 생산하고 있다. 반도체 등 최첨단 제품의 클린품에서 사용하는 직경 0.1㎜ 이하의 숏볼 제조기술은 경성산업의 자랑거리다. 동 소재의 0.1㎜ 이하 숏볼은 t당 가격이 범용제품의 10여배 수준인 4000만~5000만원을 호가한다.

김 대표는 '발품경영'의 신봉자.제품을 팔러다니고 사업경험도 채우기 위해 동종과 이종 업종 가릴 것 없이 700여개 기업을 견학했다.

그에게 이젠 여성기업인으로서 한계는 없다. 초기에는 "전공이 뭡니까" "직접 생산은 합니까"라는 질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고,회사 방문 때마다 보험세일즈맨으로 오해받기 일쑤였다.

경성산업에는 영업사원이 따로 없다. 김 대표는 직접 영업을 맡는다. 결정권을 가진 사장이 상대해야 상대방 요구에 맞게 융통성 있는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면서 국내 판로를 확장하고,미국 인도네시아 등지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40억원.경성산업은 현재 528㎡ 규모인 공장을 내년 1652㎡ 규모로 확장 이전한다. 이에 따라 생산량이 월 1200t 규모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김 대표는 올 들어 커팅(자르지)하지 않고 녹여서 응고시키는 공법을 개발,고부가가치 틈새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상태다. 그는 "숏볼 제조기술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NO.1 강소기업'으로 회사를 키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부산=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