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정감사가 진행될 때면 해마다 낯익은 광경이 펼쳐진다. 기업의 최고 경영진,금융회사 주요 임직원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여야간에 비생산적인 정치공세까지 오가는 국감장 뒷자리에서 온종일 막연히 대기하며 지친 모습을 보이기 일쑤다. 그야말로 1분이 아까운 공 · 사기업의 대표들이 굳이 국감 현장으로 불려간 이유가 무엇인지 모호한 경우도 흔하다.

올해도 내달 5일부터 열리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각 상임위별로 감사일정을 짜면서 증인이나 참고인 채택에 나서고 있다. 이 일정은 이번주 본격 진행될 예정이지만 해마다 되풀이된 마구잡이식 증인 채택이 똑같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 벌써부터 큰 우려를 낳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 경총은 어제 '기업인 증인 신청에 대한 경영계 입장'이란 보도자료를 통해 "역대 국정감사는 불필요하게 기업인을 대규모로 증인으로 채택해 기업감사라는 오명을 받아왔다"고 지적하면서 "민간기업인의 증인 출석은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엊그제 발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여당의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가급적 기업인들에 대한 증인신청 및 채택을 자제해달라"며 "광범위하게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채택하면 기업경영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너무도 당연한 이 말에 주목하는 것은 매번 비슷한 지적은 나왔지만 현실은 달랐기 때문이다. 안 원내대표는 "기업인들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회복을 위해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국회가 도와야 한다"고도 했는데 이 말대로 국회가 과연 도울지,반대로 뒷다리나 잡을지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기업인의 경우도 꼭 필요한 사안에 대해선 증인으로 부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마치 권한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마구잡이로 민간인사를 증인으로 채택하고,감정 싸움에 정회가 되풀이되는 국감장에 온종일 붙잡아두는 것은 권한 남용(濫用)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지금은 경제가 겨우 회복국면에 접어든 중요한 때라는 사실을 여야 모두 잘 인식하고 사려깊게 행동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