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승용차의 대명사인 벤츠와 BMW 나라인 독일.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자동차들 중에 벤츠나 BMW는 생각보다 적다. 중 · 소형차가 대부분이다. 그중에는 현대자동차의 준중형차인 'i30'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현대차가 유럽시장에서도 i30,i20,i10 등 중 · 소형차를 앞세워 질주하고 있다.

◆미 · 일 · 유럽업체들을 제치다

유럽 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유럽에서 22만6241대를 팔았다. 작년 동기보다 19.8% 증가한 실적이다. 유럽에서 차를 팔고 있는 업체 중 증가율을 기록한 곳은 현대차와 피아트(1.1%)뿐이다. 벤츠와 BMW는 각각 18.0%와 20.3%,미국의 GM과 포드는 각각 14.2%와 5.6%,일본의 도요타와 혼다는 각각 12.6%와 11.9% 줄었다. 현대차의 질주는 말 그대로 눈부시다.

현대차는 올 들어 유럽에서 i30을 비롯한 i20(소형차),i10(경차) 중 · 소형차를 18만3862대 팔았다. 유럽 전체 판매량의 82.9%에 달한다. 작년 같은 기간의 중 · 소형차 판매비중(67.2%)보다 15.7%포인트나 높다. 이 여세를 몰아 올해 말까지 유럽시장에서 33만6000대를 판매,금융위기 직전인 지난 2006년(34만1551대) 수준을 회복한다는 계획이다.

◆적기에 구사한 공격적 판매전략

현대차가 이처럼 비상하고 있는 것은 적기에 구사한 공격적인 판매전략 덕분이다. 유럽 자동차회사들이 작년부터 감산과 감원,공장 폐쇄를 단행하자 주요국 정부는 오래된 자동차를 폐차하고 신차를 구입하는 소비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지원 조치를 내놓고 있다. 이 틈을 과감히 파고들었다. 폐차 인센티브제의 가장 큰 수혜자인 중 · 소형차 모델을 유럽형으로 개발해 대거 투입한 것.

마케팅전략도 공격적으로 구사했다. 지난 3월 말 2300여개 유럽 딜러대회를 개최해 위기 극복을 위한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며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상품 · 판매 · 마케팅 · 서비스 직원들로 '위기극복-판매활성화 특별팀'을 구성,대리점들의 판매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뤼셀스하임에서 1000㎡(303평)의 전시장과 애프터서비스센터 2개를 갖춘 현대차 딜러점을 운영하는 한스 페터 괴레스씨는 "폐차 인센티브를 활용한 현대차의 적극적인 마케팅과 한층 높아진 품질,적기에 투입한 유럽형 모델 등 삼박자가 어우러져 우리 영업점에서만 올 들어 작년 판매실적인 500대를 이미 넘어섰다"고 말했다.

◆질주는 계속된다

지난 상반기 중 유럽 전체 승용차 판매에서 경차와 소형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41.8%에 달했다. 이런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메이커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폭스바겐은 신형 폴로를 생산하는 스페인 공장의 증산을 결정했다. 도요타도 프랑스 공장에서 소형차인 아리스 생산량을 늘리기로 했다.

현대차는 폐차 인센티브가 폐지된 이후에 대비,딜러의 판매 역량 제고 등을 골자로 한 새 판매전략을 마련했다. 재고가 부족한 i10의 공급물량도 늘리기로 했다. i30의 경우 스포티 팩 등 파생 모델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달 말에는 체코공장에서 양산하는 친환경 i30 블루 디젤(ISG장착) 모델도 투입한다. 유럽 중 · 소형차 시장의 강자 자리를 굳힌 뒤 명품차 시장에서도 한판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다.

프랑크푸르트(독일)=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