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지수는 경제의 '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체온계

[경제교과서 친구만들기] (29) 물가지수
18세기 초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한 학생은 평소 친분이 있던 성공회(영국의 국교회) 주교 윌리엄 플릿우드(William Fleetwood)를 찾아가 학교의 학비 지원 규정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학생의 사정은 이러했다.

당시 옥스퍼드 대학은 1440년에 만들어진 규정에 따라 한해 수입이 5파운드를 넘으면 학비 지원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었다.

이 규정 때문에 장학금을 받을 수 없었던 학생은 2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생계비가 많이 상승했을 것이니 15세기의 규정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학생은 플릿우드 주교를 찾아가 그동안 물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밝혀줄 것을 부탁했다.

이 학생이 플릿우드 주교를 선택한 것은 행운이었다.

플릿우드 주교는 전부터 물가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연구할 자료도 이미 확보해 놓고 있었다.

플릿우드 주교는 학생의 부탁으로 연구를 시작해 결국 15세기 5파운드의 가치는 당시(18세기 초)의 30파운드 정도와 같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곧 18세기 초에 15세기에 5파운드로 살 수 있었던 물건들을 사기 위해서는 30파운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2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화폐의 구매력이 6분의 1가량으로 감소한 셈이므로 학교의 규정이 부당하다는 학생은 주장은 신빙성이 있었던 것이다.

물가지수를 누가 맨 처음 개발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플릿우드 주교의 연구를 근대적 물가지수의 시초로 보고 있다.

현실세계에는 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상품들이 존재한다.

각 상품들은 우리 생활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다를 뿐 아니라 그 값이 오르고 내리는 정도도 상이하다.

경제 전체의 상황을 살필 때 어떤 한 개별 상품의 가격만을 관찰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없을 것이다.

물가(prices) 혹은 물가 수준(price level)이란 개별 상품의 가격이 아닌 수많은 상품들의 가격을 평균한 가격 수준을 가리킨다.

이런 물가의 움직임을 알기 쉽게 나타내기 위해 작성하는 지표가 바로 물가지수(price index)다.

물가지수는 기준 시점의 물가 수준을 100으로 놓아 비교 시점의 물가 수준을 나타낸다.

어떤 시점의 물가지수가 100 이상이라면 기준 시점보다 물가가 상승한 것이고,100 이하라면 기준 시점보다 물가가 하락한 것이다.

물가지수는 흔히 경제의 상태를 나타내는 체온계와도 같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체온계가 사람의 체온을 하나의 수치로 나타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가지수는 경제 전체의 총 수요와 총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물가를 기준 시점과 비교한 지수로 나타내준다.

의사는 진찰을 할 때 환자의 체온을 재보고 열이 높으면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판단을 내린다.

물가지수가 큰 폭으로 변동을 한다면 이는 경제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물가지수를 작성할 때 모든 상품들의 가격 변동을 다 측정해 지수를 계산한다면 정확성을 높이는 데는 기여하겠지만 지표로서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모든 상품들의 가격을 다 관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적시에 정보를 제공하는 지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물가지수는 쓰임새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는 물가지수로는 소비자물가지수,생산자물가지수,GDP디플레이터 3가지가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통계청이,생산자물가지수는 한국은행이 매월 작성하며 기준 연도는 5년마다 개편된다.

GDP디플레이터는 한국은행이 분기별로 작성을 하고 있다.

이 3가지 물가지수는 각기 다른 측정 목적과 측정 방법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consumer price index;CPI)는 물가상승률을 계산할 때 사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물가지수로 도시가계가 소비하는 상품들의 가격 변동을 측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플릿우드 주교가 물가 변동을 계산한 방법은 15세기와 18세기 초의 특정 상품 묶음의 가격 변화를 비교하는 것이었는데 이 방법은 바로 소비자물가지수를 계산하는 방법과 맥락을 같이 한다.

소비자물가지수는 몇 백 개의 특정 품목들을 선정한 후 이 품목들의 가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해 작성하는데 동일한 상품 묶음에 대해 사람들이 전보다 더 많은 값을 지불한다면 물가가 상승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2009년 현재 소비자물가지수의 기준 연도는 2005년(2005년=100)이며 조사 대상은 전국 38개 도시의 489개 재화와 서비스다.

소비자물가지수의 조사 대상 489개 품목이 우리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분명 같지 않을 것이다.

489개 품목은 가계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10,000 이상이어야 한다는 기준에 의해 선별이 되는데 489개 중에서도 가계 지출에서 아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이 있을 것이고 아주 작은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소비자물가지수를 구할 때는 489개 품목을 시장거래액 비중에 따라 가중치를 달리해 평균한다.

보통 사람들은 몇 백 개 품목의 가격 변화를 두루 고려해 물가 변동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로 구입하는 몇 개 상품의 가격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소비자가 피부로 느끼는 체감물가와 소비자물가지수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구입 빈도가 높고 지출 비중이 높아 가격 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생활필수품 156개를 선정해 생활물가지수를 별도로 추계해 발표하고 있다.

생산자물가지수(producer price index;PPI)는 국내 생산자가 국내 시장에 출하하는 상품의 평균적인 가격 변동을 측정하기 위해 작성되는 물가지수로 소비자물가지수 조사 대상 품목에 포함되지 않는 원재료 · 중간재 · 최종 자본재 등을 조사 대상으로 한다.

2009년 현재 생산자물가지수의 기준 연도는 2005년이며 조사 대상 품목은 884개(재화 801개,서비스 83개)다.

소비자물가지수와 마찬가지로 추계를 할 때 각 품목들은 각각 다른 가중치를 적용받는다.

앞에서 설명한 소비자물가지수와 생산자물가지수는 고정된 몇 백 개의 품목을 조사 대상으로 해 지수를 추계한다.

따라서 두 물가지수는 모든 상품의 가격 수준을 나타내는 포괄적인 물가지수라고 보기는 힘들다.

GDP란 일정 기간에 한 나라의 국경 안에서 생산된 모든 최종 생산물의 시장가치로 정의되므로 GDP를 이용한 물가지수는 한 나라 안에서 생산된 모든 최종 생산물의 평균 가격을 나타내는 포괄적인 물가지수가 될 수 있다.

실질GDP는 그 해의 가격이 아니라 기준 연도의 가격으로 그 해의 생산량을 평가한 것이므로 명목GDP를 실질GDP로 나누어 백분비로 표시하면 물가지수가 되며 이를 GDP디플레이터(GDP deflator)라 한다.

GDP디플레이터는 국민소득을 측정하는 한국은행에서 발표를 하고 있으며 2009년 현재 기준 연도는 소비자 · 생산자물가지수와 마찬가지로 2005년이다.
[경제교과서 친구만들기] (29) 물가지수
기준 연도에는 명목GDP와 실질GDP가 같기 때문에 기준 연도의 GDP디플레이터는 100이다.

만약 다음 해에 생산량이 변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물가 수준이 크게 올랐다면 어떻게 될까?

명목GDP는 물가의 상승으로 증가를 했겠지만 생산량에 변화가 없으므로 기준 연도의 가격으로 평가한 실질GDP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 경우 물가 상승으로 명목GDP가 실질GDP보다 크게 되므로 GDP디플레이터는 100 이상이 될 것이다.

GDP디플레이터는 모든 최종 생산물의 평균 가격을 나타내는 포괄적인 물가지수이기는 하나 GDP가 측정된 이후 계산을 할 수 있으므로 국민소득 추계 결과 사후적으로 계산되는 종합적인 물가지수라 할 수 있다.

김훈민 KDI 경제정보센터 전문원 hmkim@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