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이나 종이 승차권을 내고 버스나 지하철을 탔던 때가 벌써 10년 전이다. 그 때는 가게에서 토큰을 사두는 게 당연했지만,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교통카드나 신용카드를 기계에 대기만 하면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고,덤으로 환승 할인까지 받는다. 소프트웨어를 접목시킨 교통시스템 덕이다. 최근 산업간 융합이 강조되고 있는데,그 중심엔 소프트웨어 산업이 있다. 수출 효자산업인 자동차나 휴대폰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차량간 거리를 자동으로 인식해 충돌을 방지하는 자동주행시스템,휴대폰으로 실시간에 방송을 시청하는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에도 소프트웨어는 필수다. F-15K 전투기 한 대 가격이 1000억원인데 소프트웨어가 내장된 전자장비의 가격만 500억원 정도라고 한다.

최근 정부가 소프트웨어산업을 포함한 IT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IT코리아 5대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지난 8월 실시한 전경련 조사 결과에서 그나마 경쟁력이 있다는 우리 IT서비스 산업의 기술역량이 해외 선진기업의 70%에 불과하다고 나타났는데,이번 5대 발전전략은 정부가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고심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만 필자는 IT코리아 건설이라는 정책목적 달성을 조금 더 앞당기기 위한 방안 몇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먼저 정부나 기업의 정보시스템을 구축 · 관리하는 IT서비스 산업의 경우 내수시장에 머물지 말고 해외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한다. 국내에서 성공한 전자정부시스템,교통카드시스템 등의 IT서비스를 패키지로 묶어 수출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최근에 몇몇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와 코스타리카의 국가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을 수주한 것이 좋은 사례다.

이를 촉진하려면 정부가 기업들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뒷받침해줘야 한다. 예컨대 정부수주 등에 있어 운영 · 유지보수 사업비를 산정할 때 기준을 프로젝트 참여인원이 몇 명인지 보다 해당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기준으로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한편 우리의 임베디드(embedded) 소프트웨어 기술력은 선진국 대비 50~80% 수준에 불과해 매년 막대한 로열티를 외국에 지불하고 있다.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란 차량제어시스템에 적용되는 자동차용 반도체와 같이 기존 제품에 내장하는 소프트웨어다. 이 분야의 경쟁력이 낮은 이유는 운영체제나 개발도구 등 원천기술이 열세일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구동에 필요한 각종 시험장비,전문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 해결방안은 기존에 제조업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 소프트웨어 기업과 협력체제를 구축해 기술력과 전문인력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다. 최근 현대차와 삼성전자가 자동차용 반도체를 공동 개발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도 이러한 고민에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글,윈도,오피스 등과 같은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적절한 대가를 지불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의 출현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소비자 의식수준의 선진화가 선결과제다.

날이 갈수록 세상이 편리해지고 있다. 버스 토큰들은 아마도 조폐창에서 동전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덕이다. 그만큼 소프트웨어 산업은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산업구조도 고부가서비스로 전환시키는가 하면 제품의 국제경쟁력도 높이는 핵심 산업이다. 이제 새로운 수익모델은 소프트웨어 연계 사업에서 나올 것이며,이는 경제위기 이후 펼쳐질 새로운 경제질서에서 국가간의 명암을 가르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소프트웨어산업에 대한 기업 및 정부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

정병철 <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