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9일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업무 집행의 전부 정지 3개월)에 해당하는 중징계를 확정했다. 은행권 최고경영자(CEO)에 대해서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황 회장이 파생상품 투자 지시

황 회장이 우리은행장으로 재직했던 2004년 3월부터 2007년 3월까지 이뤄진 파생상품 투자는 모두 74건으로 금액만 15억5000만달러에 달한다. 이 중 부채담보부증권(CDO)이 61건 10억7000만달러,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CDS) 12건 4억8000만달러였다. 여기서 12억5000만달러 손실이 발생했고 황 회장의 귀책사유로 인한 손실만 1조2000억원이었다고 금융위원회는 설명했다.

쟁점은 '황 회장이 투자를 직접 지시했느냐'와 그 과정에서 '법규 위반 사실이 있었느냐' 두 가지다. 금융위는 황 회장이 당시 투자를 맡았던 IB본부장과 체결한 목표설정 계약서에 '구조화 증권과 같은 파생상품에 투자 확대를 지시했으며 그 예시로 CDO와 CDS를 명시했다'고 언급,황 회장이 사실상 투자 확대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은행 자산 증대 목표를 이사회가 부여한 목표보다 10.5~17.7% 높게 부여하는 등 은행법 23조(자산 운영의 건전성 확보를 위한 내부통제 기준 준수 의무)를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또 2006년 3월 리스크관리심의회의 사전심의 절차를 폐지하고 IB본부장이 건당 5000만달러까지 전결로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리스크 관리 규정을 위배한 점도 문제 삼았다.

조영제 금융감독원 일반은행서비스국장은 "황 회장이 위기 발생시 전액 손실 가능성이 있는 CDO 상품의 위험성을 몰랐다기보다는 자산을 늘리기 위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법규 위반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투자를 허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예보,징계 절차 조만간 개시

황 회장에 대한 징계 절차를 끝낸 금융당국은 우리금융지주의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황 회장에 대한 민 · 형사상 책임 추궁 절차에 들어갈 전망이다. 예보는 빠르면 다음 주 중 임시 예보위원회를 열고 '대주주' 자격으로 황 회장의 경영 실패에 대한 중징계를 확정한 뒤 후속 절차에 착수할 계획이다. 예보 관계자는 "법규 위반에 의한 투자 실패가 명확해진 이상 공적자금 회수를 위한 절차를 밟지 않을 경우 예보로서도 책임 추궁을 피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황 회장의 불법 행위로 인해 우리은행에 손실이 발생한 만큼 소송의 당사자는 예보가 아닌 은행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책임론 · 형평성 논란도

그러나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의 직무유기를 지적하는 여론도 거세게 일고 있다. 우리은행이 막대한 손실을 낼 때까지 방관하다가 '사후 징계'에 나선 것은 전형적인 책임 회피 아니냐는 비판이다. 금감원은 파생상품 투자의 위험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를 했고,투자결정 과정에서 일일이 관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고는 하지만 '칼자루'를 쥔 정부가 자신에는 관대하고 황 회장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는 것이다.

징계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황 회장의 후임인 박해춘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은 재임 시절 4건의 CDO · CDS 투자로 1억7000만달러를 손해봤지만 주의적 경고에 그쳤다. 일부에서는 "투자가 이익으로 귀결됐다면 법규 위반을 문제삼지 않았을 것"이라며 금융당국의 징계 사유가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