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확실히 달라졌다. 이번 총리를 포함한 개각에서의 인선을 보며 든 생각이다. '고 · 소 · 영, 강부자' 내각으로 거센 비난을 받았던 첫 조각 때와는 너무도 변화된 모습이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로 지명하면서 이 대통령은 자신에 대해 비판적이고 이념적으로도 다소 다른 입장의 인사까지 포용한다는 통합과 화합의 리더십을 과시했다. 또한 중도실용으로 대표되는 최근 국정운영 노선의 변화가 그저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 정책 속에 실제로 녹아들고 있다는 사실도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인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의미심장한 변화는 '정치인' 이명박의 발견이다. 이 대통령은 임기 초 정치권을 '여의도식 정치'라고 강하게 질타했고 자신은 이들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존재로 간주했다. 그래서 대야당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당청 간에도 엇박자가 생겨났고 이는 국정운영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번 인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한국 정치의 대표적인 두 균열 축인 지역,이념에 대한 고려뿐만 아니라,더 나아가 차기 권력과 집권당 내부에 미칠 영향까지 감안한 매우 정치적인 선택을 했다. 정운찬 카드를 통한 다양한 정치적 효과를 사전에 계산한 것이다. 정치의 수를 읽으려는 이 대통령의 변화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정무장관직의 부활 역시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국무총리는 흔히 말하듯이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높은 자리지만 그 자리의 경중은 결국 총리보다 높은 단 한 사람,즉 대통령과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국민의 정치적 위임은 대통령 1인에게만 주어진 것이므로,대통령이 어느 정도의 개인적 신뢰를 총리에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총리의 역할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이해찬 총리가 '실세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노 대통령이 그만한 개인적 신뢰를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해찬 총리의 경우에는 노 전 대통령과 이념적으로나 정책적인 시각에 있어 커다란 차이가 없었다. 그런 만큼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이 전 총리는 큰 부담없이 전적으로 일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운찬 총리 지명자는 얼마 전까지 4대강 사업,감세 정책 등 소위 MB노믹스로 불리는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총리직을 담당하게 됐지만 주요 정책에서 대통령과 생각이 꼭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 총리의 경우 일부 정책에 대해 대통령과 입장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전처럼 '의전형 총리'로만 쓰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이다. 이번 인선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대체로 우호적일 뿐더러 차기 권력과 관련된 언급까지 나오면서 정치적으로도 주목 받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정 총리 입장에서도 여러 차례의 관직 제의를 고사하며 지켜 온 학자로서의 입장을 버리고 현실정치에 뛰어드는 나름대로 어려운 선택을 한 만큼,생각이 다른 정책에 대해서까지 위에서 지시한 일이라고 그대로 따를 수만도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향후 이 대통령이 정 총리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점을 흥미롭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과거 우리나라 총리의 역할이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소 관계에 따라 정해졌다면 이번에는 정치적 고려와 판단이 더 큰 의미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입장의 차이를 어떻게 조율해 내고 어느 정도까지 자율적 권한을 허용할 것인지 대통령과 총리 간의 관계 설정이 이번 인선의 성패를 궁극적으로 좌우할 것이다. 이번 개각 정치에서 확인된 '정치인 이명박'의 정치력은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해 보인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