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고령화 추세에 맞춰 단계적으로 정년연장해야”

반 “청년 일자리도 없는데 국민 세금 부담만 늘것”

흔히 '신의 직장'으로 통하는 공기업 직원의 정년 연장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공공기관 선진화를 명분으로 한나라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공기업 직원의 정년을 노사합의로 공무원 정년에 준하는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연장키로 합의한 것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한나라당 쪽에서는 "공기업 직원 정년 연장의 구체적 방안은 정해지지 않았으며 정년 연장에 따른 비용 등의 문제 해결은 개별 공기업의 노사가 합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한다.

한국노총 쪽에서는 "공기업 노사관계가 정부의 선진화 계획에 의해 엉망이 되고 있다"며 "정년연장은 초임삭감과 정년감축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공기업 직원들을 위해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정치권과 노동계 안팎에서는 이번 합의를 두고 한나라당이 노동단체의 압력에 밀려 인기영합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여당 내에서도 "청년실업과 고용불안의 시대에 철밥통이라는 공기업 직원의 정년을 연장하자는데 국민이 얼마나 동의할지 모르겠다"는 회의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금 같은 고용위기 상황에서 근로자들의 정년을 늘리는 일은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 할만하다.

문제는 정부가 '공기업 선진화'를 통해 공기업 직원들의 철밥통 의식을 깨겠다는 마당에 이들의 정년을 연장하는 게 과연 타당하냐는 점이다.

공기업 직원의 정년연장 문제를 분석해본다.

⊙ 찬성 측, "급속한 고령화 추세에 맞춰 정년을 단계적으로 연장해야"

찬성하는 쪽에서는 은퇴 계층을 부양하는 근로 계층의 부담을 일정 수준에서 억제하기 위해서는 인구의 고령화추세에 맞춰 정년퇴직 연령을 단계적으로 연장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인구감소에 맞춰 민간기업의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단계적으로 늘리고 있으며,공무원의 경우도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늘리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구의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정년을 그대로 적용하면 연금제도에 상당한 어려움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연금 지급대상 연령을 상향 조정하거나 연금 지급액을 삭감할 경우 고령자 인권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고령화에 맞춰 정년퇴직 연령과 연금 지급 연령을 동시에 늘릴 수 있는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년 연장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도록 일정 연령 이상에서는 임금이 감소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고령 근로자가 경험을 통해 축적한 노하우를 젊은 근로자에게 전파할 수 있도록 협력적인 근로형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반대 측, "청년실업과 고용불안시대에 공기업 직원만 혜택줘선 안돼"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거나, 취업했더라도 고용이 불안한 사람이 넘쳐나는 마당에 공기업 및 공공기관 직원의 정년을 늘리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다.

요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도 임용받지 못한 청년이 증가하고 있고, 가뜩이나 비정규직 해고 등으로 고용 문제가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꼬집는다.

공기업 직원의 경우 정년 보장으로 일단 입사하면 큰 문제가 없는 한 해고당할 위험이 없으며, 임금 또한 성과와 관계없이 연령에 따라 인상돼 고임금의 고령 인력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인사적체가 심해지면서 낮은 임금의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아 조직의 활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데도 정년 연장을 시도하는 것은 결국 국민들의 세금부담을 늘리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라고 비판한다.

⊙ 공기업 선진화 정책을 실천하고 고용 유연성확보에 매진해야

국민연금 수령연령이 60세를 기점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맞춰 정년을 연장하자는 주장도 수긍할만하다.

하지만 고용불안시대에 '신도 탐내는 직장'으로 통하는 공기업 직원의 정년을 우선적으로 연장하겠다는 발상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한나라당 지도부가 기본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고용 유연성'이란 정책기조에 어긋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공기업 고용안정화 조치는 노동시장 내의 차별화를 가속화하고 청년층의 진입을 가로막을 게 너무도 뻔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한나라당이 너무 인기영합주의에 빠진 것 같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별 공기업이 노사합의 정도로 공기업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도 의문이다.

정부가 공기업선진화를 통해 방만한 경영을 효율적인 체제로 바꾸고 직원들의 철밥통 의식을 깨겠다며 벼르고 있는 까닭이다.

지금은 공기업 직원의 정년을 연장할 때가 아니며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 보다 힘을 쏟지 않으면 안 된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공기업선진화방안

공기업 구조개혁을 위해 이명박 정부가 지난해 8월 마련한 것으로, 민영화를 비롯 통폐합 인력감축 임금삭감 등을 담고 있다. 1단계로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를 통폐합하고, 경북관광개발공사 등 27개 공기업을 민영화하며, 한국관광공사 등 12개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등 단계적으로 개혁작업을 벌이고 있다. 체계적인 공기업민영화 정책의 첫 단추를 끼웠다는 점에서 평가할만하지만 해당 공기업노조와 정치권 일부의 반발 등으로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있다.

임금피크제

일정 연령에 이른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해주는 제도로, 워크 셰어링(work sharing)의 한 형태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공무원과 일반 기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선택적으로 적용하고 있으며,한국에서는 2001년부터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관련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2~3년동안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에 변함이 없으며 고용도 유지되는 단기형과 기존의 고용환경과 제도를 개선할 목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시행되는 중장기형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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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8월16일자 보도기사

한국노총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과의 고위정책협의회에서 공기업 직원 정년을 60세까지 연장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공공기관 선진화 관련 합의문'에 조인했다고 16일 밝혔다.

합의문에는 현재 58세인 공공부문 직원의 정년을 공무원(60세)에 준하는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연장하고,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직원에 대해서는 무기계약 전환 등을 포함한 고용안정 대책을 수립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노조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노사가 자율적으로 맺은 단체협약에 대해서는 '노사자치주의' 원칙을 존중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이번 합의는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대한 노동계의 영향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이번 합의가 사문화되지 않도록 후속 대책을 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