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머리도 식힐 겸 교외로 나갔다. 작은 국도변에 플래카드가 10여개 붙어 있었다. 빨간 페인트로 휘갈겨 쓴 구호들은 아마도 그 동네 토지 보상과 관련된 내용들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내용들이 너무도 살벌하고 거칠었다. 그 길을 지나 상점이 모여 있는 시내로 들어갔다. 첫눈에 들어온 것은 어지러울 정도로 빨간색을 사용한 큰 간판들이었다. 마치 건물들이 빨간색 간판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도로변 휴게소에 들렸다. 주차 후 조심스럽게 차문을 열었는데 옆 차에 내 차문이 가볍게 닿았다. 옆 차의 여성 운전자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휴게소로 들어갔다. 조금 후,내 차로 돌아오니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여성 운전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차문에 흠집이 생겼다며 이때까지 세상에서 본 중에서 제일 무서운 얼굴을 하고 나를 노려보았다. 두 차가 안 움직였기에 내 차문을 열고 그쪽 차문에 대보았다. 그 젊은 아줌마가 주장한 흠집은 내 잘못은 아니었다. 그래도 불만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차문 접촉에 대해 왜 사과를 안 하느냐고 시비를 걸었다. 처음에 사과한 것을 설명했지만 자기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니까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며 공연히 흥분해서 계속 시비를 건다.

조그마한 변두리 식당에 갔다. 주차창에 차를 대려고 들어가는데 입구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잠시 기다리다 비켜 달라는 의미로 가볍게 경적을 울렸다. 역시 세상에서 최고로 불만 있는 얼굴로 나를 노려본다. 식사를 한 후 나가 보니 내 차의 좌측면 앞에서 뒤쪽 끝까지 자동차 키 같은 것으로 하얗게 줄 흠집을 내놓았다.

요사이,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불만이 가득 차고 화가 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누가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바로 폭발할 것 같은 태세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짜증나서 그런 것일까. 색조 심리학자들은 녹색은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서 편안하게 하고,붉은 색은 반대로 사람의 감정을 흥분시키고 불안하게 만든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녹색경제,녹색성장 등 녹색이란 단어가 유행이다. 본래의 의미야 온실가스 발생을 줄여 환경을 보호하면서 경제 성장을 하자는 뜻이지만,불만과 화로 벌겋게 달아오른 사람들의 마음을 식혀주고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초록색 세상은 없을까 생각해본다.

많은 상점들이 크고 빨간색 간판을 차분한 색상의 작고 세련된 간판으로 바꾸고 있으며,TV 아나운서들이 비록 마음 산란한 뉴스를 전달하고 있어도 경음(硬音)을 피하기 위해 '뻐스' 대신에 '버스'라 발음하고,'까스' 대신에 '가스'라 발음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경제적인 녹색성장과 함께 우리 모두의 마음도 녹색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손영기 GS파워 사장(연세대 겸임교수) ykson@gspow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