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만들었던 베르뎅의 두오몽 요새.다소 생소한 유적지이지만 한국 관광객들은 한국어로 된 상세한 안내서와 함께 관광을 즐길 수 있다.A4용지 2장 분량의 안내서에는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주변 상황 등 역사적 사실들에서부터 유적지 내 각 유물들의 용도에 대한 설명까지 두루 담겨 있다.

영어와 프랑스어,독일어 안내서만 비치된 두오몽 요새에 한국어 안내서를 비치해 놓은 사람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유학 중인 이하규씨(30·왼쪽)와 안준호씨(23).이들이 제작한 한국어 관광안내서는 베르뎅 외 스트라스부르,낭시,랭스,콜마르,브장송 등 프랑스 6개 도시 35곳의 관광지에서 만날 수 있다.

이씨와 안씨가 한국어 관광안내서를 만들게 된 것은 2007년 9월 벨기에 안트워프를 여행하면서 경험했던 일 때문이다.안트워프 대성당 인근에 일본 도요타가 세운 ‘플란더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와 파트라슈의 기념물을 보게 된 것.

원래 이곳엔 아무런 기념물도 없었지만 ‘플란더스의 개’가 일본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동명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해져 일본인 관광객들의 방문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도요타가 기념물을 제작해 시에 기증했다.

이씨는 “일본은 멀리 벨기에까지 와서 자국 국민들을 위해 투자하는데 수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유럽을 방문하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국어 안내서조차 찾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며 “심지어 한국기업이 후원하는 박물관에도 한국어 안내서가 없는 일이 허다해 직접 안내서를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들은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스트라스부르의 생 토마 교회를 소개하는 안내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로 된 안내서를 가져와 두달에 걸쳐 번역해 6장 분량의 한국어 안내서를 완성했다.

인쇄는 중고 레이저 프린터 한대를 구입해 50여부를 출력하는 것으로 해결했다.이 후 1년 동안 스트라스부르 역사박물관,생 폴 교회,자선 구호소 등 6곳의 관광명소에 한국어 안내서를 제작해 비치했다.

안씨는 “처음에는 관광지 관계자들이 우리가 만든 안내서의 내용을 믿을 수가 없다며 거절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갈 수록 프랑스어도 늘고 노하우도 생겨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생활비를 아껴 자신들이 머물고 있던 스트라스부르에는 안내서를 비치할 수 있었지만 다른 도시의 관광명소에까지 자력으로 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때마침 대한항공이 루브르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본 이들은 2008년 8월 무작정 조양호 회장의 비서실로 전화를 걸었다.비서실에서는 그룹의 통합커뮤니케이션 팀으로 연결을 해줬다.

평소 대학생들의 진취적인 도전에 관심이 많았던 대한항공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여행정보(travel.koreanair.com) 사이트에 경험담을 올리는 것을 조건으로 제작 실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2년간 35곳의 관광명소에 안내서를 제작해 비치했지만 이들이 갈길은 아직 멀다.

이들의 목표는 프랑스에 있는 22개주 주요도시의 관광명소에 모두 한국어 안내서를 비치하는 것.한 도시당 5곳씩만 잡아도 100곳이 넘는다.

안씨는 “물론 영어로 된 안내서가 있기는 하지만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게 우리나라 현실 아니냐”며 “안내서에 적혀 있는 이메일로 ‘덕분에 즐거운 관광을 했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