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사회보험 중 하나인 산재보험을 민영화하려는 움직임이 10여년 만에 다시 재현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21일 보험개발원이 산재보험을 민간에 개방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데 이어, 이번엔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 산재보험 민영화 문제를 공론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서비스업 진입규제 장벽을 낮추자며 11개 업종에 대해 ‘경쟁제한적 진입규제 정비 토론회’를 열고 있는 공정위는 지난 12일 ‘산재보험시장 독점구조 개선 관련 토론회’를 열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토론회는 산재노동자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산재보험이 민영화되면 자신들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이익단체들이 과민반응을 보인 것이라는 게 공정위측의 설명입니다. 이에대해 산재노동자단체 관계자는 “정호열 신임 공정위원장의 과거 경력을 볼 때, 민간 보험사들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커, 공정한 토론진행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정 공정위원장은 보험개발원 객원연구원과 한국보험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보험 전문가로, 취임 당시 보험사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런 정 위원장이 취임 한 달도 안 돼, 과거 김영삼 정부시절 검토되다 중도 폐기됐던, 산재보험 민영화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으니 오해를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산재보험 민영화를 주장하는 측은 이대로 가다간 재정악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법정책임준비금 부족액이 3조644억원에 달해 재정악화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민간보험사들을 참여시켜, 위험률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적용해 재해율을 낮춰야 한다는 게 보험업계의 주장입니다. 위험률에 따라 보험료 부담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업들이 안전설비를 강화하고 재해율을 낮추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노동계는 그러나 산재보험에 민간 보험사들의 참여를 허용하면 위험률이 낮은 대기업 화이트 칼라 계층만 민간 보험으로 빠져 나갈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보험사들이 위험률이 높은 업종에는 엄청나게 비싼 보험료를 물리거나 아예 가입을 거부할 게 뻔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산재 위험이 큰 블루칼라 계층만 공적 보험 영역에 남게 돼 산재보험 재정은 더욱 악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노동계는 또 사회안전망으로서의 산재보험의 역할도 간과해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회보험 영역에 남아 있는 상황에서도 산재 인정 여부를 불러싼 법정공방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영리 목적의 민간영역으로 넘어갈 경우 산재 신청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겠냐는 것입니다. 결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규제 축소, 진입장벽 완화 등 친시장적 정책도 사회적 약자 보호 등 공익성이 담보되는 수준에서 진행돼야 경제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박병연기자 bypark@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