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암억제자(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하지 않게 보호하는 유전자)의 작용 원리를 규명해 신개념 암치료제의 개발 가능성을 열었다.

서울대학교는 윤홍덕 의과대 교수팀이 암억제자인 p53을 조절하는 새로운 후성유전학적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9일 발표했다.이 연구결과는 ’네이처 구조분자생물학(Nature Structural & Molecular Biology)’10일자에 게재됐다.

세포내에서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는 활성산소,자외선,화학물질 등에 의해 끊임없이 손상된다.사람의 경우 한 세포당 하루 백만 개 정도의 분자에 손상이 일어난다는 보고가 있다.DNA 손상이 적절히 치료되지 않으면 노화,세포사멸,암 등이 발생할 수 있다.세포내에는 이런 DNA 손상에 대처하여 빠르게 DNA를 복구시키는 다양한 분자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암억제자 p53은 DNA 손상 복구를 총지휘하는 단백질로 대부분의 암세포에서는 그 기능이 저하돼있다.p53은 현존하는 유전자 중에서 암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평상시 크로마틴(DNA가 단백질에 실처럼 감겨있는 복합체)에서 p53이 조절되는 원리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대다수 암 발생과정에 관여하는 암억제자인 p53의 활성조절 메커니즘을 연구한 결과,DNA 손상 복구를 총지휘하는 불활성화된 p53이 DNA 손상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유전자 주변의 크로마틴에 미리 준비돼있고 그 과정에서 ‘캐빈1(Cabin1)’ 단백질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연구팀은 ‘캐빈1’ 단백질이 평상시에는 암 억제자 p53과 결합,p53의 기능을 억제하지만 DNA가 손상될 경우에는 신속하게 분해돼 p53을 자유롭게 풀어줘 p53의 활성 반응을 도와주는 기능을 가졌음을 규명했다.

윤홍덕 교수는 “이번 연구는 크로마틴 상에서 p53의 후성유전학적 조절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으로, 논문 심사자들로부터 종양억제와 관련된 p53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 받았다”며 “또한 항암제 개발 과정에서 새로운 후성유전학적 접근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황경남 기자 knhwang@hankyung.com

◆후성유전학(epigenetics)=DNA 염기서열의 변화가 생기지 않으면서 유전자의 조절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예를 들어 만능줄기세포가 분화해서 근육세포로 변하는 과정에서 DNA 염기서열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유전암호와는 무관한 후성유전학적 변화에 의해 두 세포에서 발현되는 유전자의 종류와 양,그리고 그로 인한 표현형에는 큰 차이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