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오후 7시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지하광장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책상과 의자 몇개로 만든 가설진료소에서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과 대학생들이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의료상담이나 진료를 하고 약도 나눠준다. 소음 탓에 말이 잘 들리지 않아 몇차례씩 묻고 대답하는 것이 다반사다.

환자가 밀려들 때면 그야말로 정신이 없다. 진료는 오후 10시까지 계속된다. 무료병원 프리메드(Free Med) 소속 대학생들과 의사들이 만들어내는 장면이다. 매주 일요일엔 외국인노동자를 진료하고 월 1회 쪽방촌 · 판자촌을 방문해 구급함을 나눠주는 '홈 비지팅 사업'도 벌인다.

프리메드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표 송호원씨(23 · 연세대 의학과)를 비롯 의대 간호대 경영대 등에 다니는 대학생 50여명이다. 학생이라 직접 진료를 할 수 없어 의사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회원 대부분은 학업과 '사업'을 병행하느라 시간이 부족해 잠을 줄였다. 처음엔 '뭔가 보여주자'는 생각이 컸으나 이젠 어려운 이들을 돕는데서 큰 만족을 느낀다고 한다.

프리메드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소외계층을 무료로 진료하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무작정 후원금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영자금은 순회진료용 '프리메드 버스' 외벽에 부착하는 기업광고와 프리메드 고유 디자인이 담긴 티셔츠 · 가방 판매수익 등으로 마련한다. 버스광고의 경우 1㎞를 주행할 때마다 1만원씩 적립된다. 진료를 위해 많이 움직일수록 광고비도 많아지는 기발한 방식이다. 프리메드는 '사회적 기업'(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으로 인정도 받았다. 아직은 일부 후원금에 의존하고 있지만 계속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어 내겠단다.

우리나라 최저생계비(4인가족 기준 132만원) 이하 계층 550만명중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는 157만명에 불과하다. 2005년 기준으로 복지지출 비중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55.4%)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6.7%다. 특히 OECD 30개국 중 공적 의료지출 규모는 29위에 지나지 않는다. 의료기술은 발달했으나 의료 사각지대는 여전히 많은 것이다. 프리메드는 그 사각지대를 파고 들어 도움을 주고 있다. 정쟁 북핵 취업난 등으로 어수선한 때이지만 대학생들이 시간을 쪼개 뜻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데서 희망을 본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