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디딘지 40년이 되었다고 한다. 밤에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다가 달을 보면 증조할머니 생각이 난다. 무릎에 날 누이고 온갖 얘기 들려주시고,사친가 사우가 등 내방가사를 들려주시던 증조할머니,외증조 할머니와 친 · 외가 할머니들이 생각난다.

특히 '노망'드신 증조할머니를 놀리느라고 어린 삼촌이 대낮에도 달 떴다고 하면,그 높은 댓돌을 날렵하게도 내려와 지칠 때까지 아버지와 삼촌,고모 그리고 증손녀인 내 아명(兒名)을 부르면서 절하며 빌곤 하셨다. 날 위해서는 뭐라고 비셨냐고 어린 내가 여쭈면 "앉아서 밥상 받고,일어서 호령하고,걸어서 내 땅 밟고…",지극히 세속적이었으나 나를 위해 그렇게 비셨다는 말씀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외가에 가면 외증조 할머니께도 업혀 자랐다. 두 증조할머니와 함께 나누었던 추억이 내게 그리움 이상의 정신적,정서적 풍요가 돼 시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6~7살 때까지 할아버지 등에 업혀 다녔다. 아무리 도망쳐도 할아버지는 나를 업고 논밭 둘러보시기를 좋아하셔서,업혀드리는 것이 효(孝)라는 걸 일찍부터 알았다. 자다가 비오는 소리에 섞여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한시나 시조 읊는 음악(?)에 잠 깨어 화장실가던 일이며,한글토가 달려서 천자문을 금방 다 배웠는데도,할아버지는 내 글 공부를 자랑하시느라고 책거리 떡을 만들어 이웃에 돌리게 하셨고,그래서 우물가 아낙들이 "진사띠기는 지집애 유학지사(幼學之士) 봤다지러"라고 빈정대기도 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할아버지는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첫 시집 출판기념회에서 돌아온 나에게 할아버지는 한 이야기를 빌려 자연의 이치를 모르는 시와 성공의 이치에 맞는 시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할아버지의 이 말씀은 아직도 나의 시론이다.

너무 더워 잠이 안 오거나 밤비소리가 겁나는 밤에는,외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는 내 손자 사진을 비디오나 동영상으로 보기도 한다. 나도 손자에게 천자문 250수 한시를 가르쳐주고 싶은데,지금 같아선 장차는 우리 조손(祖孫)이 서로 말도 통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경제문제나 부부문제로 조손(祖孫)가정이 늘어난다. 조손가정 어린이는,모자(母子)가정 아이보다는 다소 문제가 있지만 부자(父子)가정보다는 훨씬 문제가 적다는 연구결과도 밝혀지고 있어,아동의 생활환경에서 조부모 역할이 새삼 조명되고 있다.

이미 조부모-부모-손자녀의 3세대 가정아이들은 부부가정 아이들보다 유머 위트감각이 뛰어나고,창의성도 높고 성격도 너그럽고 사회성도 폭넓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로 밝혀졌다. 더 오래 전에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조부모 부모 그리고 손자녀간의 양성 3세대간 문화전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이 중 한 사람만 없어도 문화전수에 왜곡이 생긴다면서,조부모와의 잦은 접촉을 권했다.

어린이들의 건전한 성장 발달에서 실버세대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해,유치원 어린이들이 주기적으로 부서진 장난감 등을 양로원으로 가져가,노인들과 함께 수선하는 상호작용 프로그램이나,양로원과 유치원을 이웃하여 짓기 등이 선진 외국에서는 일찍부터 시행돼 왔다.

아이들은 젊은 부모로부터는 삶이란 달리고 경쟁하는 것이라고 인생의 반쪽을 배운다면,대가족환경에서는 인생이란 때로 멈춰서 뒤돌아보기도 하는 것,특히 생로병사는 물론 죽음 저편까지도 상상하게 되는 생의 전 과정을 배울 수 있을 게다. 4세대가 한집에 살던 대가족 가정에서 자라느라고 성장기에 내가 누려온 혜택을 내 손자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은데,만날 수가 없다. 조부모 노릇 할 기회조차 없어 아쉽고 안타깝다. 어린 손자와 물장구치며 흠뻑 젖어 킬킬거려 보면 얼마나 멋지고 호강스런 여름휴가가 될까마는-.

유안진 <시인·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