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할인점이 납품업체의 파견 직원에게 정해진 일 외에 제3의 일을 강요했다면 공정거래법상 시정조치뿐 아니라 민사상 손해배상까지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관행적으로 부당한 업무를 강요받아 온 파견 직원들이 소속된 납품업체들의 유사한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시식코너에서 고객에게 음식을 요리해 주는 파견 직원에게 대형 할인점이 다른 일을 강요하는 것은 다반사였지만 이 사실이 적발되면 공정위의 시정조치와 과징금부과뿐 아니라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3부는 26일 M유통이 대형할인마트 E사(합병 전 C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소송에서 손해배상액을 적게 계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생굴 황태포 등을 납품하던 M사는 2004년 판촉사원 파견을 강요당하고 기념행사 물품 · 판매촉진용 제품(시식용 등) · 리베이트 등의 무상 제공을 강요당했다며 2억8500만원을 손해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대법은 "M사는 파견 직원들에게 월급만 지급하고 실질적 근태관리 및 급여결정은 E사가 했다는 점,직원들이 업무상 재해시 어떤 민형사상 책임도 E사는 안 진다는 것,납품업자의 간섭 없이 가격을 E사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오픈프라이스(open price)제도 등을 볼 때 E사는 공정거래법상 금지하는 거래지위남용행위를 했으며 이는 민사상 불법행위"라고 밝혔다.

대법은 특히 파견 직원들이 원래 황태포를 물에 불린 후 뼈와 가시를 제거,양념해 판매하는 업무를 담당해야 했으나 다른 생선코너에서 근무하는 등 제3의 업무에 투입된 것은 명백한 거래지위남용행위로 보았다. 대법은 "이런 불법행위로 인해 M사가 얻은 손해는 불공정거래가 없었더라면 M사가 지출하지 않았을 비용,즉 인건비 등 합계로 보는 것이 타당한데 원심은 이익제공강요행위 등 불법행위 성립과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판시했다. 대법은 이어 "대형 유통업체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공정거래행위를 남발해 납품업체 이익이 급감하고 피해를 보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앞으로는 피해를 입은 업체들이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 청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