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 근처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샀다. 오늘 집에서 읽고 있는데 서점 주인이 찾아와 물었다. “사가신 책 가지고 계시죠?” 읽고 있던 책을 내밀며 “이건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낚아채듯 뺏더니 짝짝 찢어 버렸다. 깜짝 놀라 “왜 이러세요?” 따졌다. “잘못 판 책이라서요.” 서점 주인은 이렇게 말하며 책값을 돌려줬다.

죄송합니다. 꾸며낸 얘깁니다. 어떻습니까? 말이 됩니까? 그렇습니다. 말이 안됩니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미국 아마존이 전자책(e-book) ‘1984년(Nineteen Eighty-four)'과 ‘동물농장(Animal Farm)’을 판매해놓고 지난 16일 원격삭제하고 돈을 돌려줬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아마존 토론방에는 전자책 원격삭제를 비난하는 글이 쇄도했습니다. 뉴욕타임스 테크크런치 등 온/오프라인 매체도 아마존의 처사를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테크크런치는 ‘아마존은 왜 소비자 가정에 직접 방문해 잘못 판매한 책을 찾아 불태우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아마존을 ‘1984년’에 등장하는 독재자 ‘빅브라더’에 비유하는 이도 많았습니다. 네트워크 사회에서 전자책 원격삭제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사회 구성원들이 불안하지 않겠느냐는 얘기죠. 비난이 들끓자 아마존은 ‘방식을 바꾸고 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원격삭제하지 않겠다’고 해명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아마존은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으로 전자책 15만종과 신문 잡지 등을 판매합니다. ‘킨들’이라는 전자책 단말기(e-book reader)도 팔고 있죠.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전자책이 꽤 인기가 있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아마존 킨들은 물건이 없어 팔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아마존은 왜 전자책을 원격삭제하는 ‘만행’을 저질렀을까요? 저작권 때문입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과 ‘동물농장’ 저작권이 미국에서는 2044년까지 유효한 반면 캐나다 호주 러시아 등지에서는 이미 소멸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작권이 소멸된 국가에서 만들어 아마존에서 팔았던 것이죠.


‘1984년’과 ‘동물농장’ 전자책 가격은 각각 0.99달러, 우리 돈으로 1천원 남짓입니다. 저작권을 적용했다면 훨씬 비쌌겠죠. 겨우 1달러 가지고 그러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분노하는 건 권리를 침해당했기 때문입니다. 전자책을 원격삭제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느냐는 거죠.

아마존의 전자책 원격삭제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닙니다. 전자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환경파괴와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이 커짐에 따라 책 신문 잡지 등은 점차 디지털로 바뀌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스마트폰 방식이든 킨들 방식이든 전자책 붐이 내년부터 확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광파리>

김광현 기자 kh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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