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행과 개인 모두 자금을 운용할 데가 없어 고심하고 있다.

예금을 조달해 대출로 운용하는 은행들은 `여신 포트폴리오'를 짜는데 애를 먹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정부 정책에 따라 중소기업 대출에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하반기에는 중기대출 의무 비율이 완화된데다 중기대출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러 틈새를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장 확실한 대출 영역이었던 주택담보대출도 정부의 규제 강화로 다시 막힌 상황이다.

대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어 은행에 굳이 손을 벌릴 필요가 없다.

개인 투자자들도 갈 곳을 몰라 방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주식시장은 혼조 양상을 보이고, 부동산 규제는 더욱 강화될 기미가 보이자 은행의 단기예금에 돈을 묵혀두고 있다.

◇ 은행들 "어디 돈 굴릴 데 없소?"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우리.신한.하나.

기업.외환은행 등 6개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 15일 기준 약 309조4천402억 원으로 6월 말보다 2조902억 원 감소했다.

이들 은행의 전월 대비 중기대출 증감액은 지난 5월 2조2천998억 원 증가에서 6월 4천792억 원 감소로 돌아선 뒤 7월까지 두 달 연속 줄어들고 있다.

주택담보대출도 지난달 1조8천415억 원 늘어났으나 7월에는 보름 동안 7천406억 원이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달 하순부터 본격적인 휴가철이 되면 대출 수요는 더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대출 잔액은 대부분 은행이 6월보다 감소하거나 제자리걸음을 했다.

다만 외환은행과 국민은행은 증가세를 보였다.

A은행 자금담당 부장은 "지금 중기대출, 주택담보대출 등 어느 것 하나 늘리기가 쉽지 않다"며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자금운용이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B은행 자금담당자는 "작년 말에는 돈 구하기가 어려웠다면 이제는 조달비용과 운용 수익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고민"이라며 "현재 대부분 은행이 돈만 쌓아놓고 자금운용을 보수적으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운용할 곳이 마땅치 않다 보니 과거처럼 높은 금리를 주고 자금을 적극적으로 조달하려 하지 않는다고 은행들은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금융권에서만 자금이 맴도는 상황이 지속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달 2일과 9일 실시한 정례 환매조건부채권(RP) 매각에는 각각 43조 원와 29조 원이 넘는 돈이 몰려 이 중 13조 원씩만 낙찰됐다.

낙찰 금리는 2.0%로, 은행들이 단기자금이 넘쳐 기준금리 정도 수준의 이자만 받고 돈을 한은에 예치하려 했다는 의미다.

금융권 관계자는 "근본적으로는 경기가 확실하게 상승세로 돌아서 기업 투자 수요가 늘어나야 금융권에 묶여 있는 자금도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개인 투자자도 방황
강우신 기업은행 강남PB센터장은 "요즘 주식, 부동산 시장 전망이 너무 불확실하다 보니 5억 원 이상의 현금을 쥔 부자들이 자금을 묶어두고 있어 PB들이 일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는 "자산가 중에는 연 3%의 확정금리라도 받으려고 예.적금에 돈을 묶어두거나 아니면 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다리면서 머니마켓펀드(MMF)나 수시입출금식예금(MMDA), 환매조건부채권(RP) 같은 단기성 자금에 넣어두는 두 부류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최근 주가 상승으로 원금을 회복한 일부 펀드 투자자들은 자금을 환매해 은행 예금에 넣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6개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15일 현재 289조7천188억 원으로 6월 말보다 5조5천511억원 급증했다.

6월의 증가액은 2천408억 원에 불과했다.

은행들은 정기예금의 상당 부분이 만기가 6개월 미만의 단기성 자금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MMF에도 이달 15일까지 5조5천16억 원이 유입됐으며 6월 중 감소세를 보였던 CMA 잔액도 이달 중 1조3천161억 원 증가했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시장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 보니까 투자자들이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며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고 경기 회복에 대한 확신이 생길 때까지는 특정 투자처에 정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조재영 기자 indigo@yna.co.kr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