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풍속이 혼효하여 선비들이 경서를 안읽는 건 물론 함께 시(詩)와 예(禮)를 논한다는 말도 듣지 못한다. 농지거리를 보면 성색(聲色,노래와 여색)과 화리(貨利,물화로 생기는 이득)에 관한 것들로 비루하고 속되지 않은 게 없다. 사대부의 행검(行檢)이 이러니 실로 한탄스럽다. '

정조(正祖)의 '일득록(日得錄)'에 나오는 내용이다. '행검(行檢)'은 매사에 절제하고 언행을 조심한다,스스로 자신을 단속한다는 뜻이다. 요즘 말로 하면 철저한 자기 관리다. 행검의 바탕은 수기(修己,자기 수양)와 이해득실에 물들지 않는 염약(廉約,청렴과 절약)이라고 돼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하거니와 공직자의 행검엔 가족 관리도 포함될 것이다. 정조는 자식 교육의 근본으로 충실과 돈후(敦厚,두터운 인정)를 꼽고,오래도록 나라의 녹을 먹은 집 자식이 규범을 무시하고 부화를 숭상한다면 이는 부형의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검찰총장 내정자의 낙마는 공직자의 행검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하고도 남는다. '공부 잘하는 자식은 나라의 자식,돈 잘버는 자식은 장모의 자식,못난 자식은 내 자식'이라는 우스갯소리엔 잘나서 정 · 관계에 진출한 자식은 일신의 안일이나 부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내지 멀어야 한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지아비로서 처자식에게 잘해주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고,갚을 수 있으니 빌렸고,아는 처지에 함께 여행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배나무 아래선 갓끈도 고쳐매지 말라고 하듯 공직자라면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않아야 한다.

높은 자리를 얻으려 할 때 뿐이랴.능력에 행운까지 더해져 자리를 차지한 이의 행검은 더욱 중요하다. 중국 한(漢) 무제(武帝) 때 정위(廷尉,지금의 검찰총장)였던 적공은 해임된 뒤 자신을 찾는 사람이 뚝 끊어진 걸 보고 '문전작라(門前雀羅,참새그물을 칠 만하다)'라며 한숨지었다고 한다. 세상 인심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행검은 몸에 배야지 어느날 갑자기 되지 않는다. 정조의 조언은 나랏일은 물론이요 어디서든 기회를 갖기 원하는 이들 누구나 가슴에 깊이 새겨 둘 만하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군자는 되지 못해도 소인은 되지 않겠다고 한다. 이는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삼가지 못하면 천리(千里)의 큰 착오가 생기니 말을 이처럼 쉽게 해선 안된다.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