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과 제1야당이 한곳에서 나란히 점거농성을 하는 일이 이틀째 계속됐다. 유례가 없는 이런 코미디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다름아닌 대한민국 국회의 본회의장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각각 농성조까지 편성해 교대를 해가며 본회의장에서 밤을 새우면서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국정 현안을 놓고 건실한 토론을 하고 협상을 통해 해법(解法)을 찾아나가야 하는 '민의의 전당'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광경이 오늘 제헌절 61주년에 다시 보는 18대 국회의 모습이요,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미디어법 때문이다. 물론 서로가 서로를 조금도 믿지 못하면서 비롯된 일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의장 직권상정으로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할 것이라 의심하면서 사전 실력행사에 나섰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의장석을 점거하는 등으로 법안처리를 육탄저지할 것이라고 본다. 양당은 15일 레바논 동명부대의 파병연장 동의안을 처리하면서 안건처리후 본회의장에서 함께 철수한다는 신사협정을 맺었으나 서로 못믿겠다며 그대로 농성으로 이어온 것이다.

이렇게 국회가 희화되고 정치가 불신의 대상이 되는 일이 더이상 계속되어선 안된다. 국가발전에 결코 도움이 안되는 일이다. 문제는 그런 일을 여야 의원들이 자초한다는 점이다. 최근 전경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번 임시국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법안에 대해 60%가 비정규직법이라고 응답했다. 미디어법이 가장 다급하다는 응답은 9.6%에 그쳤다. 그런데도 여야 공히 미디어법에 당운을 걸고 있는 듯한 태도다. 이러니 18대 국회의 상반기 의정활동 성적이 평균 40.7점으로 낙제점 이하라는 설문조사의 결과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비정규직법만 해도 노동계까지 불러들여 판을 벌였으나 입씨름만 하다 결론도 못낸 채 상대방 탓만 하고 있다. 이 바람에 대책없이 실업자만 양산되게 만들었으나 책임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비정규직법 협상결렬 원인에 대해 '민주당의 현실인식 부족과 발목잡기식 행태'라는 응답(28.9%)과 '한나라당의 리더십 부재'라는 대답(26.5%)이 엇비슷하게 나온 것도 시사점이 있다. 본회의장 동시 점거농성으로 제헌절을 맞는 여야 의원들은 이런 민심을 다시한번 겸허히 돌아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