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주말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이하 '친구')에서 이준석 역으로 출연 중인 김민준(34)은 요즘 표정이 진지하다.

2003년 영화 '화성으로 간 사나이'로 연기에 데뷔, 벌써 경력 7년차에 접어든 그에게 이번 드라마는 배우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늠하는 분수령이기 되기 때문이다.

"곽경택 감독님이 제 연기 인생에서 '친구'가 터닝 포인트가 될 거라고 하셨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친구'는 카메라 앞에 서도 무섭지 않다고 겨우 느끼게 된 첫 작품이거든요. 이제 한번 날아보자는 생각이 들어요."

◇ '사랑'에서 '친구'까지

김민준은 자신이 준석 역으로 캐스팅된 이유를 곽경택 감독의 2007년 영화 '사랑'에서 찾았다.

그는 이 영화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건달로 완벽하게 변신, '김민준의 재발견'이란 평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사랑'이 '친구'로 오기 위한 오디션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곽 감독님이 저를 좋게 기억하셨는지 '친구'를 제작할 때 직접 전화해서 준석을 맡아달라고 하셨어요. 영화 '친구'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감독님과 꼭 함께 작업하고 싶었는데, 정말이지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 "같은 악보지만 연주자가 다르다"

그러나 800만이 넘는 관객이 영화 '친구'를 봤고 유오성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준석을 연기했기 때문에 같은 배역을 연기하는 김민준으로선 부담감이 적진 않았을 것 같다.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사실 제가 기자라도 궁금했을 거예요. 그런데 전 그걸 악보에 비유하고 싶어요. 같은 악보라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르잖아요. 마치 '마이 웨이'라는 음악은 같지만 엘비스 프레슬리와 프랭크 시내트라가 부른 노래의 느낌이 각각 다른 것처럼 말이죠. 유오성 선배가 준석 역을 너무나 잘하셨지만 제가 연기하는 준석은 또 다를 거라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원작을 의식하고 스트레스받는 건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민준은 곽경택 감독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준석을 현실 속으로 끄집어 내려고 곽 감독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늦은 시간까지 감독님과 함께 술을 마시며 준석이란 캐릭터에 대해 토론을 했죠. 영화 '대부'에서 알 파치노가 보여준 조직 보스의 모습도 함께 그려보고, 드라마를 찍는 8개월 동안 수없이 감독님에게 질문하면서 저만의 준석을 하나하나씩 만들어 갔어요."

◇ 김민준의 준석을 만들기까지

김민준은 준석이란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얼굴에 선 굵은 주름을 만들고 물을 며칠 동안 마시지 않았다고 말했다.

"클로즈업했을 때 눈빛 외에 어떤 것으로 준석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이마에 석 삼(三)자와 미간의 내 천(川)자 모양의 주름, 턱에 복숭아씨 모양의 주름을 만들었어요. 그리곤 어떨 땐 삼자 주름만, 어떨 땐 삼자 주름 50%, 천자 주름 20%, 턱 주름 30%를 사용하자는 식으로 치밀하게 계산했죠. 준석의 거친 목소리를 위해 안 피우던 담배도 물기 시작했고요."

"준석이 마약에 찌든 장면이 있었는데 마약도 일종의 자기 학대잖아요. 그래서 전 물을 며칠 동안 마시지 않는 방법으로 나 자신에게 가혹해지자, 라고 생각했어요. 준석이 어떤 고민에 고통스러워 하는지, 왜 자신을 막 대하는지 알고 싶었거든요. 무사히 마약 장면을 끝낸 뒤 1.5ℓ 페트병에 담긴 이온음료를 벌컥벌컥 마시며 무심코 '이게 며칠 만에 마시는 물이야'라고 말하니깐 옆에 있던 감독님이 놀라시더라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기뻐하시더라고요."

김민준은 탁자 앞으로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아 진지한 눈빛으로 준석이란 캐릭터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피력했다.

어? 그러고 보니 오른쪽 손등과 왼쪽 관자놀이에 상처가 있다.

"아, 이거요? 액션 장면을 찍다가 다친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컷' 소리가 나기 전까진 제가 다쳤는지도 몰랐다는 거예요. 피가 이렇게 났는데도 준석에 몰입하다 보니 다쳤는지 몰랐다니깐요. 그때는 저 스스로 대견하더라고요.하하."

◇ "배우란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게"

인터뷰를 하다 보니 한자릿수에 머무는 '친구'의 낮은 시청률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갔다.

"촬영할 때 뷰파인더로 시청자들과 같은 화면을 보는 카메라 감독님께 드라마가 어떠냐고 물어봤어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전부 다 좋다'라며 활짝 웃으시더라고요. 그만큼 현장에선 에너지가 넘쳤고 배우들과 제작진도 열심히 만들었어요. 단지 영화와 같다, 같지 않다로 드라마를 재단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김민준, 준석이란 캐릭터에 푹 빠진 것 같은데 후유증은 없을까.

"후유증이요? 아직 그런 거 모르겠어요. 촬영이 안 끝났잖아요. 사전 제작이지만 이번 달 말에 추가 촬영을 위해 부산에 다시 내려가요. 글쎄요, 촬영이 다 끝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죠."

"전 시청자와 관객에게 연예인이 아니라 배우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배우라는 수식어가 창피하지 않은 배우 김민준이요."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engi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