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상아탑인가 아니면 산업인가에 대한 오래 된 논쟁이 최근에 다시 불거졌다. 대학교육이 시대변화에 너무 뒤처져 있으므로 기업처럼 전면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일각에서 대학을 학원으로 만들려는 시도라며 크게 반발한 것이다. 거론되고 있는 쟁점들을 정리하면 첫째 대학교육이 시대의 변화에 뒤처져 있는가,둘째 왜 뒤처져 있는가,셋째 그렇다면 어떻게 대학교육을 개혁할 것인가 하는 데 모아진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서 발표한 교육부문 국제경쟁력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교육의 사회부합지표에서 한국은 2007년 40위에서 2008년 53위로 급격히 추락했다. 고등교육 이수율은 4위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학교육의 질은 급변하는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되레 부실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육과학기술부와 대학교육협의회가 주관한 '2008년도 산업계 관점의 한국대학평가 결과'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교수들은 흔히 사회적 요구에 부합하는 교육이라고 하면 특정분야에 대한 편협한 실무지식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대학을 학원으로 만들고 졸업하면 당장 신입사원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가당치 않다'면서 반발한다.

그러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은 특정분야에 대한 실무 및 전문지식보다는 다기능간의 융합기술,리더십,팀워크,문제해결 능력,분석력,창의력,의사소통 능력 등과 같은 일반소양에 더 방점이 찍힌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대한 구체적 성찰이 없이 '대학은 국가를 발전시킬 리더를 양성하는 곳이기에 학원식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막연하고도 안이한 인식 자체가 바로 사회적 불일치를 유발하는 원인인 것이다. 이는 대학교육의 목표를 변화하는 수요자인 사회의 요구에 두기보다 공급자인 대학 스스로 설정해 그 목표에 안주하려 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명문대와 취업중심 대학교는 교육목표가 달라야 한다. 우리나라의 명문 경영대학들도 인증을 받기 시작한 미국의 경영교육인증원(AACSB)의 종전기준은 모든 경영대학들에 동일한 교육목표를 따르도록 했다. 하지만 개정된 기준은 각 대학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적절한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춰 교과과정을 편성하고 주기적으로 개편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공학인증제 등 몇몇 분야에서 이 같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그 영향력은 아직 매우 미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대학들은 '상아탑'이란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사회의 요구를 반영하려는 자발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대학 지원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GDP 대비 교육관련 공공지출은 4.4%로 전세계 31위였다. 이는 중하위권이지만 사교육을 포함하는 총교육비 지출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사교육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많다는 것 자체가 교육의 사회적 불일치에 기인한다. 따라서 지원예산의 확대를 요청하기 전에 사회적 부합도를 높여서 사교육비를 줄이거나 공교육으로 유인해야 한다.

대학의 교양과목들이 문화센터 수준이라는 지적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우리 대학의 교과목을 편성하면서 '체육'과목을 제외했더니 반발이 심했다. 어느 대학에서나 가르치는 과목이므로 당연히 가르쳐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교과목을 편성하는 것,그리고 그에 따라 기존의 과목들도 정기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합리적 접근론이 교수사회의 방임주의와 자기과목 보호라는 이기주의에 의해 희생돼서는 안될 것이다.

임진혁 < 울산과기대 교수·경영정보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