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에 있는 L사는 500만원을 들여 공장내 작은 창고를 하나 지으려 했다. 그런데 각종 인 · 허가를 위해 이 회사가 준비해야 했던 서류는 무려 19가지였고 여기에 들어간 총비용은 창고 신축비의 8배나 되는 4000만원이었다. 아주 황당한 얘기 같지만 실제 기업들이 현장에서 겪는 사례들이다. 정부가 '규제 전봇대 뽑기'를 표방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얘기다.

어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밝힌 '2009년 기업활동 관련 저해규제 개혁과제'에 따르면 투자를 하고 싶어도 이를 가로 막거나 과도한 비용을 유발시켜 결과적으로 기업의 손발을 묶는 등 불필요한 규제가 135개에 이른다고 한다.

아직도 기업을 옥죄는 규제가 이렇게 많다고 하니 그간 추진돼 온 규제개혁이 과연 얼마나 효과를 거뒀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전경련이 지난 3월 국내 기업 244개사를 대상으로 이명박 정부가 진행한 규제 개혁에 대한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 '만족한다'는 응답은 27.1%에 그쳤다. 물론 전경련 측이 열거한 규제가 모두 철폐 대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기업활동에는 장애가 되더라도 다른 공익목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업계의 이 같은 고충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아무리 재정 금융정책을 동원해 경제 살리기에 애를 써도 이런 규제가 사라지지 않으면 기업 투자가 살아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경기회복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10대 기업이 자본금의 15배에 달하는 사내 유보금을 쌓아 놓고도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를 정부는 차제에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기존의 규제 개혁(改革) 방식과 속도에 일대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