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미국의 남북전쟁은 북군의 승리로 끝났다. 객관적인 군사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북군이 승리한 요인은 무엇일까. 남북전쟁의 성패는 소총의 노리쇠와 방아쇠의 호환성에서 판가름났다. 북군은 누구나 쉽고 신속하게 개인화기로 사용할 수 있는 '휘트니'라는 표준 소총을 개발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링컨 대통령은 군수물자가 남군에게 넘어가지 못하게 철로의 간격을 넓히는 표준화 전략으로 노예해방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오늘날 표준의 위력은 총칼 없는 경제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1980년 중반 소니는 베타방식의 비디오테이프를 고집하다 표준을 선점한 마쓰시타의 VHS 방식에 시장을 내주었다. 뛰어난 컴퓨터 기술을 가진 매킨토시는 제3자 생산을 허용하지 않은 고가 정책을 고수하다 IBM의 호환 PC에 무릎을 꿇었다. 이동통신의 강자 모토로라도 유럽방식(GSM)이 사실상의 표준으로 채택되면서 노키아에 선두 자리를 내주었다. 이 밖에도 표준을 장악하면서 한순간에 시장을 역전시킨 경우는 무수히 많다.

표준 선점은 시장에 먼저 진입한 기업의 이점을 무색하게 만든다. 일회용 기저귀의 시초라 여기는 P&G의 팸퍼스는 실은 존슨앤존슨의 '척스'보다 30년 뒤에 시장에 선보였다. MP3 플레이어의 대명사로 불리는 애플 아이팟의 원조도 우리나라의 '엠피맨'이라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인텔,휴렛팩커드,질레트 등 세계적 기업이 비록 최초로 시장에 진입하지는 못했지만 표준을 선점하는 '재빠른 2등' 전략으로 시장을 재창조,독식하고 있다.

표준은 앞서가는 자들이 기득권을 반영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들고,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무기로 활용되기도 한다. 선진 국가나 기업이 표준화 정책을 중요시하는 이유 중 하나다. 더욱이 표준과 기술기준이 통합되는 추세에 따라 표준의 국제화도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ISO(국제표준화기구),IEC(국제전기표준회의),ITU(국제전기통신연합) 등 국제기구에서 인정한 '공적 표준'에 우리 표준을 얼마나 많이 반영하느냐가 국가 경쟁력 확보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100년의 국제표준 역사에서 우리의 왕성한 발자취는 1990년대 중반 이후 10여 년에 불과하다.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의 자료에 따르면,국제표준 제안 수는 2001년 7건에서 2008년 212건으로 늘었다. 주로 동영상 압축기술(MPEG)과 와이브로기술,지상파 DMB 등 정보기술(IT)과 조선 분야의 신청이 활발하다. 2021년까지 로열티 수입만 1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되며,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도 확보했다. 반면 미국과 유럽연합(EU),개도국의 환경과 노동,기술규제를 통한 우회적 보호무역 장벽도 높아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기술 장벽 건수는 2006년 875건에서 2008년 1251건으로 늘었다. 전 세계 각국이 자국의 이익에 유리한 국제표준은 도입하면서 한편으로는 수입품에 대해 시험성적서나 적합성 인증서를 요구하는 표준전쟁을 하고 있다.

국제표준은 글로벌시장에 적용되는 '게임의 룰'이다.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룰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먼저고,더 확실히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유리한 룰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룰을 정부나 표준화 기관만 하기에는 주변 여건이 녹록지 않다. 산업현장에 종사하는 전문가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한 이유다.

후발 주자의 약점을 극복하고 표준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정부나 기업의 개방적 전략도 중요하지만 이해 당사자의 적극적 참여와 국제적 네트워크 형성이 필요하다. 코리아 스탠더드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될 때 우리는 세계 시장의 추종자가 아니라 선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갑홍 < 한국표준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