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


총체적 난국이라고 한다. 당연한 결과다. 원칙과 이념을 잃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우리는 잘 보고 있다.

미봉과 타협을 되풀이할 때 파국은 예비된다. 세계공황 속에서 우리 정부가 그나마 잘 버티고 있고 불철주야 일만 했을 뿐인데 왜 대통령과 청와대가 욕을 먹어야 하는지 궁금해 한다면 오히려 절망이다. 참모들이 대통령의 과도한 근무시간을 걱정할 정도이고 새벽잠을 잊고 일에 몰두하는데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웬말이며 자살정국은 왜 거꾸로 쏜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지에 대한 의문도 마찬가지다.

불행히도 한국은 선진국을 향한 몸부림이 아니라 해방정국으로 되돌아가기 위한,그리고 민중독재로 돌아가기 위한 자기 파괴적 자살 충동에 허우적대는 그런 수준의 국가로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실용주의라는 단어는 결과적으로 기회주의를 위장하는 명분으로 되고 만다. 국민을 포용하고 가슴으로 끌어안는다는 실로 그럴싸한 언어유희가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도 명백해졌다.

대통령이 정적에 포위되어 있을 때 한나라당이 저토록 무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마 그런 분들을 공천했기 때문일 것이다. 출세주의자들의 화려한 이력서가 자리를 채웠을 뿐이다. 그래서 대통령 주위에는 유시민도 안희정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평화가 단순히 전쟁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평화가 다만 전쟁의 없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결과는 집권자 한 사람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재앙이 되고 만다. 평화는 영혼의 힘에서 비로소 나오는 것이다. 지금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도 전략전술도 아니다. 흰 종이 위에 이리저리 꾀를 내어보는 국정기획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로지 대통령의 용기다.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이 울리는 꽹과리 소리에 지나지 않고, 새벽잠을 잊고 연구하며 장관들을 독려해 나랏일 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도무지 가슴의 울림이 없는 것이다. 촛불시위로 광화문이 난장판일 때, 전직 대통령의 투신자살 소식이 토요일 오전의 휴식과 평화를 깼을 때, 대통령과 청와대의 그 어떤 결단도 앞장서는 모습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오로지 변명 비슷한 당혹감만으로 기억될 뿐이다.

한줌 노사모에 겁먹어 우왕좌왕한 결과 정국 전체를 좌파들에게 고스란히 내준 것 외에 우리는 본 것이 없다. 좌파 이념의 정당성이 이토록 당당하게 울려퍼지고 민중혁명적 토대 구축에 매진하면서 나라를 분열시킨 사람이 성군이며 순교자로 탈바꿈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허용한 것은 청와대다.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한 것이 결과적으로 이념 천지를 만들고 말았다.

불철주야 일하며 거둔 적지 않은 경제적 성과 따위가 대중의 안중에도 없는 것은 그래서다. 작은 싸움이 두려워 판세 전부를 고스란히 내어준 결과가 지금의 정국이다. 직계라는 자들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친박과의 패싸움에 몰두하는 지경이다. 나라를 구한다는 심정으로 한나라당을 찍었던 국민들은 어디에 마음을 의탁할 것인가. 야당이 해머를 들고 국회에 나타나면 대통령이 국회로 행진해야 하고, 광화문이 점령당하면 대통령이 그곳에 나아가야 하고, 망자에 대한 애도가 필요하다면 대통령이 봉하마을에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가서 대통령이 돌팔매질을 당할 때 그때 비로소 국민의 영혼이 깨어나는 것이다.

이념의 좌우를 초월하는 대통령의 모습, 국민 모두를 아우르는 모습은 그때라야 가능한 것이지 이념의 시궁창을 외면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념 전쟁의 구정물을 가라앉히는 것은 이념의 부재증명이 아니라 영혼의 힘을 다해 그것을 넘어서야만 가능하다. 그것에 성공해야 경제대통령도 일할 공간을 비로소 얻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로지 대통령의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