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5일 한 중소기업에 400억원의 거액을 투자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1974년 조그만 미싱회사로 출발해 연간 수출액이 1억달러가 넘는 초우량 회사로 급성장했다가 지난해 단 6건의 선물환 계약으로 부도 직전에 몰린 '썬스타특수정밀'이 투자 대상이다. 이 회사는 순수한 자체 기술로 일본기업을 제치고 컴퓨터 자수기분야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한 기업이다. 연 매출 1200억원에 영업이익도 100억원 이상 냈다. 수출 비중도 90%가 넘어 2001년 산업자원부가 이 회사 컴퓨터 자수기를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했다. 중소기업이 추구해야 할 가장 이상적 모델로 꼽혀 2007년 청와대 국정브리핑에까지 소개됐다.

탄탄대로를 걷던 이 회사는 그러나 지난해 환율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체결한 5건의 선물환과 1건의 키코(KIKO)계약에 물려 몰락으로 치달았다. 이 6건의 계약 금액만 2억달러로 평균 계약 환율은 달러당 1000원이었다. 계약금액이 연간 수출금액을 초과할 정도로 과도했던 데다 예상과 달리 환율이 급등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을 입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수출대금도 제대로 회수되지 않았다. 자금사정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2007년 말 700억원이었던 부채는 불과 1년 만에 1687억원까지 늘어났다. 회사가 완전자본잠식상태에 빠졌다.

창업 2세인 박인철 회장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곳은 산업은행.경영권을 내놓을테니 회사만은 살려달라는 박 회장의 읍소에 산은은 회사 상황부터 분석했다. 일단 컴퓨터 자수기는 대당 평균 가격이 7000만원에 달하는 고부가 정밀기계로 투자가치가 높다는 판단을 내렸다.

"기술력과 성장력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죠.그러나 워크아웃에 들어갈 경우 회사 신인도와 함께 브랜드 가치가 훼손돼 회생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임해진 산은 펀드운용 총괄팀장)

산은은 당시 구상단계였던 중소기업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이 회사에 처음으로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턴어라운드(Turn around,회생)펀드를 통해 일시적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된 유망 중소기업에 자본을 투입,경영권을 인수한 뒤 정상화시키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회사 인수와 다른 점은 기존 대주주에게 경영을 계속 위임하고,회사가 정상화되면 경영권을 돌려주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일종의 패자부활전 같은 겁니다. 기술력과 성장잠재력을 갖췄으나 한순간의 실수로 부도위기에 직면한 중소기업에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거죠."(조현익 산은 부행장)

산은은 박 회장과 경영권 양수도 계약을 맺고 지난 5일 회사 계좌로 400억원의 증자대금을 입금했다. 회사는 이 돈으로 50억원의 어음을 해결하고 부도위기를 넘겼다. 그동안 미뤄왔던 직원들의 급여도 이날 정상 지급됐다.

박 회장은 "제2의 창업을 한다는 각오로 백의종군하면서 앞으로 100년 가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산은은 올해 턴어라운드 펀드의 투자 규모를 1조원으로 확대키로 하고 제2호 투자대상 기업을 찾고 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