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전 잃어버린 가족의 흔적이라도 찾는다는 게 이렇게 큰 의미를 갖는다는 걸 이 일을 시작하면서야 알게 됐습니다. "

유전자 감정 · 감식전문회사인 휴먼패스의 이승재 대표(35)는 한국전쟁과는 거리가 먼 신세대지만'호국보훈의 달'을 맞는 기분은 남다르다. 그는 올해로 3년째 국방부가 벌이고 있는 '한국전쟁 전사자 가족 찾기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국방부가 발굴한 유골의 DNA를 분석해 유가족을 찾아주는 게 그의 역할.이러다 보니 회사 연구실에는 각종 첨단장비와 까맣게 변한 수백개의 뼛조각,수천개의 유가족 혈액샘플이 보관돼 있다.

이 대표는 "미국이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며 먼 이국땅에서의 전사자 유해까지 찾는 모습이 부러웠었다"며 "우리도 조국을 위해 몸바친 분들의 유해를 유가족 품에 안겨드릴 수 있게 돼 보람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발굴한 유해 2855구 중 유가족을 찾은 건 40여건에 불과해 안타깝다"며 "앞으로도 좀 더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전자 감정 · 감식은 이제 우리 생활과도 밀접하다. 변호사 간판이 빼곡한 서울 서초동 법원 인근에 본사를 두고 있는 휴먼패스는 법원에서 발생하는 친인척 확인,친권 주장 등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이 대표는 "과학의 힘으로 시시비비가 명확히 구분되고 감동적인 만남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삶의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혼이나 유산다툼 등으로 유전자 검사를 의뢰받을 땐 안타깝지만 잃어버린 아이가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뿌듯해진다고 한다.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미국 스키 대표선수로 출전했던 한국계 입양아 토비 도슨과 아버지 김재수씨의 만남이 대표적인 사례다. 휴먼패스는 당시 헤어진 지 25년여 만에 두 사람이 부자관계임을 확인시켜줬다. 이 밖에 해외 입양아나 교포들도 유전자 검사를 통해 모국의 품에 안겼다.

과학수사에도 참여한다. 4년 전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외부위탁기관으로 지정돼 담배꽁초나 천조각 등의 검체에서 유전자를 추출,분석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대표는 "1980년대 화성 연쇄살인사건 때 우리나라에 유전자 검사 기법이 있었다면 범인 검거 가능성이 훨씬 높았을 것"이라며 "바이오 기술이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1997년 미국 퍼듀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현지 기업의 고액연봉과 영주권 보장 제의를 뿌리치고 귀국,2000년 홍체인식 보안시스템 회사로 출발해 2003년 유전자 감정 · 감식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바이오 기술 시대가 올 것이라 믿고 내 나라를 위해 일해보고 싶었어요. " 이 대표는 2005년 말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및 복제개 스너피 검증기관으로 단독 참여,타임지에까지 실리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법원 유전자 감식,국내 첫 국제공인시험기관으로 지정됐다.

이 대표의 역할모델은 고용을 창출하고 사재를 사회에 환원한 빌 게이츠다. 그는 "유전자 정보를 활용하면 성인병 조기진단부터 한우 감별까지 사업영역이 무궁무진하다"며 "바이오 코리아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