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진(東晉) 때의 시인 도연명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는 낙원을 그렸다. 그곳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고 하나같이 친절한 사람들이 여유롭게 살고 있다고 했다.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는 1516년 쓴 '유토피아(utopia)'라는 책에서 이상향을 묘사했다. 그는 하루 6시간만 일하고도 필요한 물건을 창고에서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으며 관용 평등 자유가 구현된 곳을 지상낙원으로 봤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소도시 '마리날레다'는 현대판 낙원으로 알려진 곳이다.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마누엘 산체스 시장이 1979년 당선된 뒤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온 독특한 체제의 도시다. 공동재산,협동농장,시영주택 등 스페인의 다른 지역에선 찾아볼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마리날레다 주민 2700여명은 모두 일자리를 갖고 있어 완전고용 상태다. 주요 산업은 농업이며 주민 대부분은 시가 운영하는 협동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직장을 잃으면 노동조합에서 바로 해결해 주고 주택도 시가 직접 지어 나눠준다. 농장에서 일하며 받는 월급은 1500달러 정도.큰 돈은 아니지만 물가가 워낙 싸서 생활엔 별 지장이 없다. 일하는 동안 자녀를 보육원에 맡기는 대가로 매달 17달러만 내면 된다. 겉으로 볼 땐 지상낙원에 가까운 셈이다.

더구나 세계적 불황이 이어지면서 마리날레다에 대한 관심은 한층 높아졌다. 인근 지역 주민들이 일자리와 살 집을 찾아 잇따라 이곳으로 몰려든다고 한다.

하지만 마리날레다가 빈민층을 현혹하는 포퓰리즘 정책에 의해 지상낙원으로 과대포장됐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에 휩싸였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스페인 중앙정부와 안달루시아 지방정부 지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다 비판적 의견을 가진 주민들을 추방하는 일까지 벌어진다는 것이다. 협동농장 역시 생산성이 낮다고 한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로 'ou(없다)'와 'topos(장소)'를 합친 말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란 뜻이다. 무릉도원 역시 다시 찾아가려다 실패하고 마는 것으로 그려진다. 마리날레다를 포함해 어떤 형태로든 지상에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불완전한 사회에서나마 이런저런 불만을 꾹 참고 열심히 일하며 사는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