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터 안에 들어가 있기,할복하는 일본 병사 등 뒤에 붙어 함께 칼에 찔리기,피사의 사탑에 폭탄 설치하고 기다리기,부메랑에 수류탄 묶어 던지기….

영국 만화작가 앤디 라일리의 카툰집 《자살토끼》에 나오는 자살 방법들이다. 그림 속의 토끼는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죽기 살기로 자살하려는 토끼를 보면 '에이,저렇게 죽으려고 애쓰느니 차라리 그 힘으로 살겠네'란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책은 2003년 영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자살이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민감한 코드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 자살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 한 해 1만119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 평균 30.7명,OECD 회원국들 중 10년째 자살률 1위다.

누구나 죽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떤 이유로든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도움의 손길이 없을 때 절망하게 된다. 절망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지난달에는 시험 보기 싫다며 여중생들까지 집단 음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0대의 절반 가까이는 자살 충동을 느낀다. 실제로 그들의 사망 원인 2위가 자살이다. 청소년의 경우 자기 극복 능력이 약해 자살 유혹에 빠지기가 더 쉽다.

나도 대학 입시에 낙방해 자살을 결심했던 적이 있다. 낙방한 순간 가족과 친구들에게 부끄럽고 절망스러웠다. 그러나 돌아보니 운동과 서클 활동에 미쳐 입시 공부를 늦게 시작한 게 패인이었다. 내가 죽으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나에겐 법관이 되어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강렬한 꿈이 있었다. 다시 희망을 품었다. 죽기를 각오하면 못할 게 없다는 용기를 가졌다.

자살률이 높은 사회는 무능한 사회다.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는 증거다. 특히 청소년의 자살은 성인과 달리 성적 비관이나 왕따,가정 불화 등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혼자 고민하게 놔 두지 말고 사랑과 관심을 기울이면 막을 수 있다. 학교에 위기 대응팀을 설치하고 자살 예방 교육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수학이나 영어 한 시간 더 공부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청소년들이 꿈을 펼치기도 전에 생명을 버리게 놔 둔다면 죽은 사회나 다름없다. 최근 대통령이 자살 신드롬을 우려하고,공동체의 건강성 회복을 부르짖은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자살하려는 사람의 공통 심리는 희망이 사라져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꿈을 품고 삶을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이제 어른이 나서야 한다. "죽을 각오라면 이겨내지 못할 게 없잖아." 청소년 시절 스스로에게 했던 말을 이제 후배들에게 들려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