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했을 당시 소설가 황석영씨의 발언은 호기로웠다. 그는 "이 대통령은 중도"라고 평가하며 "큰 틀에서 (현 정부에) 동참해서 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을 구체적으로 비판하며 "욕 먹을 각오가 돼 있다"고도 했다. 이는 좌든 우든 세상 모두와 소통하겠다는 뜻으로 비쳐져 상당히 신선했다는 평가였다.

그런데 귀국하자마자 그의 당찬 '욕 먹을 각오'는 온데간데 없이 눈녹 듯 사그라들었다. '변절'이니 '훼절'이니 하는 고상한 용어부터 '스스로 죽을 자리를 파는 멍텅구리'니 '기억력이 2초인 금붕어'라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온갖 욕을 진보진영으로부터 들은 뒤다. 일각에서는 이번 순방에 동행한 게 노벨문학상을 염두에 둔 노림수라고 수군대기까지 했다.

황씨는 몇 마디 말로 장수(長壽)를 누리게 된 일이 썩 달갑지 않았던 듯하다. 그는 지난 주말 일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막힌 남북관계를 풀려는 뜻이었다. 내가 변한 건 없다"고 순식간에 말을 바꿨다. 그는 휴대전화도 꺼놓은 채 경기도 일산 자택 안에 옹송그리고 틀어앉아 버렸다. 세상 양쪽과 대화하겠다는 뜻을 거침없이 토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원래대로 한 쪽과만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황씨는 우리 시대의 굴곡을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살아온 지식인이다. 게다가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으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그의 '변화'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황씨는 지식인답게 변명이 아닌 확신으로 무성한 의혹에 당당히 맞서 자신의 올곧음과 진정성을 증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자신의 지향점이 옳다는 굳은 믿음과 자신감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황씨는 그동안 자신의 지지층이었던 세력들로부터 쏟아지는 비난에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지식인이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아닌 세인의 호불호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인기 영합주의'에 다름 아니다.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나는 고발한다'는 멋드러진 기고문을 남겨 용기 있는 지식인의 전형으로 남은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가 여론의 뭇매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는 사실을 되새기면 더욱 그렇다.